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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일 안 하고 월급 받는 사람'이 쓰는 글

by 서랍 속 그녀 2020. 3. 16.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교사입니다. 서울 시내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교육의 수장이신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님의 말씀에 따르면 현재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소속만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일 안 하고 월급 받는 삶에 대해서.

‘현재’ 일을 안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

  ‘일을 안 한다라는 표현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첫째, 일이 하나도 없어서 일을 안 한다.’둘째, 일이 있는데도 미루고 일을 안 한다.’입니다.

  먼저, 일이 하나도 없다.’ 대한 부분입니다. 개학까지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각 교사의 학급운영과 수업 준비에 대한 일을 차치하고라도 학교라는 기관의 문을 열기 위한 행정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학사일정과 그에 따른 교육과정 수립이 가장 큰 줄기입니다. 학사일정은, 2월 중순쯤 확정이 되지만 사실 1년간 만듭니다. 아주 작은 일로 예를 들어, 2019학년도 6학년 선생님이 2020학년도 6학년의 현장체험학습 날짜와 장소 예약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2018학년도에 정해진 현장체험학습을 2019년에 다녀온 뒤, 시기와 장소의 적합성에 따라 2020학년도에 수정하여 반영하는 것이죠. 각 학년부와 각 업무부(거의 모든 교사는 학년부와 업무부에 동시에 속합니다.)에서는 이런 식으로 2019학년도를 운영하며 2020학년도 학사일정의 얼개를 만들었고, 그 얼개에 따라 2020학년도 학사일정과 그에 따른 교육과정, 각 학년부와 업무부의 연간 일정이 확정되었으나, 유례없는 개학 연기로 모든 것이 깨졌습니다.

  학교는 지금 깨진 학사일정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3.23 개학에 맞춰 이번 주면 새로운 학사일정이 확정될 예정이었는데, 어쩌면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학사일정은 2020학년도를 운영하는 큰 줄기가 되어줄 뿐, 학사일정에 맞는 교육과정 재수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각 학교의 연구부장님과 각 학년의 교육과정 담당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이 외에도, 개학은 미뤄졌으나 원래 이 시기에 진행되던 행정 업무는 그대로 진행 중입니다. 교사는 교육공무원으로서 그 업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행정 업무의 대부분은 서울시교육청과 각 교육지원청에서 내려보내는 공문입니다. 일이 없지 않다는 말입니다.

  둘째, 일이 있는데도 미루고 일을 안 한다.’에 대한 부분입니다. 현재 학교는 개학 준비 중입니다. 어느 학교도 일을 두 번 해야 하니 개학 연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개학 준비를 다시 하기 싫으니 개학을 더 연기해달라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주어진 일을 위에서 내려오는 일정에 맞게 준비 중입니다.

  초등학교에는 돌봄교실이 있습니다. 개학 연기로 인해 긴급돌봄이라는 것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봄교실에 관한 업무 분장은 원래 이렇습니다. ‘돌봄전담사라고 불리는 공무직이 있습니다. 교사는 돌봄전담사의 채용과 복무(돌봄전담사의 연가 사용과 그에 따라 추가 인력 배치 등), 돌봄교실 운영에 필요한 행정 업무(돌봄교실 시설 관리부터 돌봄 학생 간식비, 돌봄전담사 인건비 등)를 봅니다. 돌봄 시간에 학생을 돌보는 역할은 교사가 아니라 돌봄전담사가 합니다.

  일부 돌봄전담사가 긴급돌봄을 거부했습니다. 본연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입니다. 그 자리도 교사가 메꾸고 있습니다. 일이 있는데 미루고 있지 않습니다. 교사의 일이 아니라 여겨져도 공백이 생기면 교사가 메꾸고 있습니다.

  현재 모든 교사가 바쁜 것은 아닙니다. 학교 업무 분장에 따라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선생님은 머리가 깨지도록 바쁠 것이고, 학생이 등교를 시작해야 업무가 시작되는 선생님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울 것입니다. 일이 없어서가 아니고, 일을 미뤄서가 아니라 현 상황에 맞게 업무를 추진하려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교사의 일에서 수업 준비는 빼고 말한 것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업 준비를 업무로 인정해주지 않더군요. 단적으로 행정 업무의 기한을 맞추기 위해서 행정 업무를 먼저 보고 수업 준비를 하기 위해 초과 근무를 하면, 학교는 이를 초과 근무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에서도 빼고 말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이번 논란은 비단 개학 연기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교사 집단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누적되어 발현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정말 솔직하게 적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인식은 분명합니다. 공무원이라 안정적이다, 퇴근이 빠르다, 방학 때 쉴 수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입니다. 그 정보를 가지고 누군가는 교사가 되기를 선택했고, 누군가는 교사가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은 다른 단점보다 장점을 크게 봤기 때문이고, 교사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단점을 장점보다 크게 봤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은 교사가 되기 위하여 누구보다 투명한 공개경쟁을 거쳤습니다. (일부 사립학교의 불공정한 교사 채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97% 이상이 공립이고, 공립학교의 정교사는 모두 임용시험 합격자입니다.) 교사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교사를 원하지 않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안정성과 빠른 퇴근, 방학이 있어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교사 집단은 그들이 버린 길을 선택한 사람일 뿐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교사라는 집단은 많은 비난의 대상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조건을 가지고 일을 할지 모두 알았는데, 그 조건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로 비난받는 상황이 불편합니다.

 

교사의 근무 조건

  교사의 근무 조건 중에서도 논란의 대상인 빠른 퇴근방학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빠른 퇴근입니다. 교사도 다른 직장인처럼 하루 8시간이 기본 근무시간입니다. 다만, 점심시간이 휴게 시간으로 계산되는 직장인과 달리,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어 퇴근이 빠른 것으로 보이는 것뿐입니다. 교사의 점심시간이 근무시간으로 인정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생의 급식지도를 위함입니다. 급식을 먹는 와중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올바른 식습관을 가지고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그래서 교사의 기본 근무시간은 9시에서 17시입니다. 각 학교의 기관장인 교장님께서 교사의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학생의 등교 지도를 위해, 원활한 1교시 수업을 위해 보통 출근 시간을 830분에서 840분으로 조정합니다. 그래서 퇴근도 1630분에서 1640분 사이에 합니다. 일을 안 해서 퇴근을 빨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의 업무 특성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일하나 교사는 아닌 교육행정직이나 공무직은 어떨까요? 그분들도 저희와 같은 시각에 퇴근합니다. (하시는 일에 따라서 급식실 조리사분들은 더 일찍 퇴근하시고, 저녁 돌봄을 담당하시는 돌봄전담사님은 늦게 출근하여 더 늦게 퇴근하실 수 있습니다.)그분들은 학생 지도를 안 하는데 왜 퇴근만 빨리할까요? 저는 학교라는 기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교사처럼 학생 지도를 하시지는 않지만, 대신 학교라는 장소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온전히 보장받지도 못하십니다. 학생과 교사가 점심시간에 교육행정직이나 공무직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기 때문이죠. 각 집단은 각 집단의 특성이 있고, 그로 인해 좋은 부분도 생긴다면 상황에 따라 안 좋은 부분도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각 집단이 누리는 좋은 점만 보고 바깥의 시각에서 비난하는 것이 불편한 이유입니다.

  다음은 가장 뜨거운 감자인 방학에 대한 부분입니다. 방학 있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교대에 다닐 때부터 수없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정말 좋기만 할 줄 알았습니다. 방학이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입니다.

  방학이 곧 교사의 휴가는 아닙니다. 학기 중보다 여유롭고, 복무의 형태가 자유로운 것도 사실이나 곧 온전한 휴가는 아닙니다. ,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해야 하고, 학교에 출근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디서 어떻게 지낼 것인지 보고도 해야 합니다. 혹은 휴가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거봐, 휴가 보내잖아!’라고 한다면, 생각하시는 것처럼 방학 전체가 곧 휴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맡은 업무에 따라서 방학 때 업무를 몰아서 해야 하는 교사도 있습니다. 맡은 업무에 따라서 방학 때 업무(제가 업무라 표현하는 것은 수업 준비와는 상관없이 교육공무원으로서 해야 하는 행정 업무를 뜻합니다.)가 거의 없는 교사도 있습니다. 이는 교육기관인 학교에 교육의 대상인 학생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출근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합니다. 각자 맡은 업무에 따라 휴가를 즐기기도 하고, 즐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다만, 방학 때 휴가를 즐기지 못한 그 교사는 1년 중 어느 때에도 휴가를 즐기지 못합니다. 그 교사가 남은 연가를 소진할 방법은 없으며, ‘교사는 방학이 있다.’라는 이유로 연가보상비 또한 없습니다. 그럼에도 , 올해는 어쩔 수 없구나.’ 하며 주어진 일을 하지, 연가를 보장받겠다며 일을 제쳐두고 휴가를 가지는 않습니다. 방학 때 교사는 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교사는 방학 때만 쉴 수 있기 때문에 보이는 시각적 착시 효과입니다. 수십만의 교사가 같은 시기에 몰아서 휴가를 가기 때문이죠.

  다음은 방학 때 출근하지 않는 교사는 무엇을 하냐에 대한 부분입니다. ‘방학 때 연가 안 쓰고도 쉬던데?’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교육공무원법 제 41에 따라 방학 중 교사는 학교가 아닌 곳에서 자기 연찬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이에, 연가를 쓰지 않고 41조 연수를 달고 학교로 출근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주장합니다. 방학 때 쉬는 것이 맞으니 놀고 돈 받는 게 맞다고 합니다. 어디까지 교사의 자기 연찬으로 봐주느냐의 문제 때문입니다.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겨울 방학 때 베이킹 강좌를 들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베이킹에 대한 관심 전혀 없습니다. 갑자기 관심이 생겨서 돈을 내고 들어본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가 두루두루 해본 경험이 학생들과 대화할 때, 학생들을 이해할 때, 학생들과 수업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해본 것입니다. 동방신기가 대유행할 때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카시오페이아일 때에, 저는 동방신기 멤버 얼굴도,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인기 가수의 무대는 한 번씩 보려고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이십여 년 만에 그림책도 찾아서 읽어봤습니다. 역시 글자가 많이 없으니 재밌더군요. 게임 전혀 관심 없습니다만, 특정 게임이 유행한다 싶으면 인터넷으로 검색은 해봅니다. 베이킹 강좌나 들으러 다니고, 그림책이나 넘기고, 인기가요 무대나 찾아보고, 게임 검색이나 하는 모습이 집순이 교사의 방학 생활입니다. 교사가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질수록, 교사의 관심 분야가 넓어질수록, 그 교사의 생활지도와 수업은 풍성해집니다.

  많은 교사가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적게는 천만 원에서 비싸게는 삼천만 원의 학비를 들여서, 야간 대학원이나 계절제 대학원 혹은 주말 대학원에 다닙니다. 학비 지원받는 것 아니고,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승진을 위해서 대학원에 가는 것 아니냐고 되묻습니다만,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가 많지는 않습니다. 한 학교에 평교사가 수십 명이면, 그중 교감이 한 명, 많아야 두 명입니다. 교장은 단 한 명입니다. 열 명 중 두어 명이 승진을 위해 대학원을 간다면, 나머지 6~7명이 그냥수천만 원의 돈과 수년의 시간을 투자하여 대학원에 갑니다. 가르치는 일이 일이기에 배우는 일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교사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대하여

  그저 공부를 좀 잘하는 조용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로 교감 선생님께 뺨을 맞아 봤습니다. 뺨을 맞고, 몇몇 선생님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온전히 그 상처로 보냈습니다. 누구보다 학교를 싫어하는 학생이었습니다. 3 때 국어 선생님이 그러셨습니다. “학교를 너무 싫어하지 말아라. 너무 싫어하면 나처럼 학교로 돌아오는 벌을 받게 된다.”. 그 말을 들으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입시가 끝나고 보니 제가 교대에 와있었습니다. 교사 집단이 너무 싫은데, 학교가 싫은데,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장점을 무시하지 못하여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바라보는 교사에 대한 시각이 왜 부정적인지도 압니다.

  일부교사의 부적절한 언행이 모든 교사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일부교사의 나태한 근무태도가 모든 교사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하지도 않습니다.

  교사도 기사를 통해 개학 상황을 듣습니다. 공문은 기사보다 늦게 내려옵니다. 개학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더 연기되면 엎었던 학사일정을 다시 한번 엎어야 합니다. 저는 학사일정이 큰 영향을 미치는 업무를 맡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많은 선생님께서 고생 중이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사태로 인해 더 큰 고생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분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학교의 휴업(휴업은 학생은 등교를 안 하나 학교는 문을 연 상태입니다. 휴교는 학생도 등교를 안 하고, 교직원도 출근을 안 하는 상태입니다.)으로 교사가 놀고먹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교사이기에 팔이 안으로 굽은 채, 다른 사람도 아닌 서울특별시교육감님의 일 안 하고 월급 받는 사람이라는 말이 불편해서 길게 적어봤습니다. ‘일 안 하고 월급 받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어떨지 알기에 더욱 길게 적어봤습니다.

  온전한 이해를 바라는 마음에 적은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도 있고, 비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긴 글을 읽고자 시간을 소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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