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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모로코

서랍6-8) 모로코 마라케시 - 여행 한 달 차, 여행과 일상 사이

by 서랍 속 그녀 2020. 7. 14.

20130428의 일기

#1. 여행 한 달 차, 여행과 일상 사이

  141일의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 하고 이틀이 흘렀다. 여행이 길어지다 보니 슬슬 여행이 일상 같고 일상이 여행 같다. 여행과 일상 사이,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그냥 낯선 곳에 있는 이 상황이 익숙하달까.

  마치 언제나 이런 삶을 살았다는 듯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다인실 숙소에서 눈을 뜨고, 뭉그적거리다가 밖을 나선다. 특별히 어디를 가는 날도 있고 그저 방랑자처럼 돌아다니는 날도 있고. 숙소나 길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과 나누는 가벼운 대화도 익숙해졌다. 매번 바뀌는 잠자리나 다인실 숙소가 딱히 불편하지 않아서 여행이 체질인가 싶다가도, 원체 여기저기 열심히 다니지 않아서 여행은 내 체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여행이 일상화되어가는 신호는 다른 데서도 나타났다. 바로 나의 생필품이 동났다는 것. 샴푸, 린스가 떨어졌다. 사실 립밤과 핸드크림은 동난 지 며칠 됐다. 립밤과 핸드크림 없이 며칠을 꾸역꾸역 버텼으나 샴푸, 린스까지 떨어진 김에 오늘은 생필품 쇼핑을 나서보기로 한다.

마라케시 메디나 근처의 공원, 나무가 너무 예뻐 홀린 듯 들어왔다.

#2. , 여기서 만나니 반갑다

  환경이 바뀌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은 아니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는 물갈이도 하고 낯선 음식에 소화 장애를 겪기도 하고, 잠을 뒤척이기도 한다지만 나는 무던하게 잘 지내는 중이다. 내 피부 빼고.

  내 피부는 유난이다. 한국에서도 기초 화장품을 잘못 바꾸면 온 얼굴이 뒤집어지는 예민함을, 고온다습의 대명사인 한여름에도 보습을 잘해주지 않으면 건조해서 간지러운 유난스러움을 가졌다.

  기후 탓인지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피부가 유난히 건조했고, 그래서 열심히 보습을 해주다 보니 립밤과 핸드크림이 예상보다 빠르게 동났다. 건조한 피부로 인한 불편함보다 낯선 화장품을 썼다가 불상사를 겪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커서 한국에서 갖고 온 보디 용 로션으로 며칠을 버텼다. 물론, ‘한 유난하는 피부인지라 보디로션을 손이나 입술에 바르면 더 건조하게 느껴지곤 했기에, 그저 보습해준다는 위안을 얻고자 한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샴푸와 린스도 떨어졌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오늘은 나서야 한다. 생필품 쇼핑을.

  이게 뭐라고 마음먹기가 힘들었다. 몸에 잘 맞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광장 내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현대식 마트는 보지 못했다. 결국 길을 가는 현지인에게 샴푸를 사고 싶다고 도움을 청했고, 시장 안의 한 구멍가게로 인도되었다.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어제 선물 받은 모로코 전통 화장품을 팔 것 같은 그런 곳으로.

  대충 아무거나 써도 괜찮은 샴푸와 린스를 먼저 구해보기로 했다. 샴푸와 린스가 있냐는 질문에 주인이 무언가를 건네준다. 낯선 향기를 풍기는 이질적인 상품을 내줄 줄 알았는데 내게 너무 익숙한 상품을 내주었다. 이 샴푸, 이 린스, 왠지 익숙하다.

  오호라, 의외로 이곳에서 한국에서 쓰던 제품과 비슷한 것을 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친김에 립밤과 핸드크림도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건네준 제품.

  니베아.

  마라케시 메디나(Medina, 구시가지를 이르는 말) 내의 작은 가게에서 니베아 제품을 마주하다니. 너무 꾸덕꾸덕해서 즐겨 쓰던 제품은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선 위험부담이 적은 가장 익숙한 제품이기에, 오늘은 너로 정했다.

  니베아 너, 여기서 만나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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