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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일상) 괜히 센치해져서 적는 글

by 서랍 속 그녀 2021. 10. 30.

#1. 시간이 멈춘 곳

  한 손에는 캐리어를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른다. 신호음과 함께 잠금이 풀리고, 익숙하나 퀴퀴함이 더해진 냄새가 흘러나왔다. 열린 문틈으로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적막한 공기가 느껴졌다.

  한 달 만이다. 주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짐만 덩그러니 남은 채 텅 비어있는 이곳은 한때 우리 삼 남매의 둥지였고, 더 먼 과거에는 우리 다섯 식구의 보금자리였다. 그저 집을 정리하고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큰 그림이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0년 전 우리 가족이 서울을 떠날 때 정리되지 못한 채 남겨진 이 집은 세월이 흘러 삼 남매의 둥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어 애틋한 이 집은, 과거에 서울을 떠난 우리 가족을 대신해 묵묵히 이 자리를 지켰듯, 또다시 서울을 떠난 우리 삼 남매를 대신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 놈이라 해야 할지, 큰 놈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젊은 놈이 군대에 갔고, 뒤이어 늙은 놈이 유학을 떠났다. 동생의 입대와 오빠의 유학은, 시기는 미정이었어도 오래전부터 정해진 바였다. 종종 둘이 떠난 후에 이 집에 홀로 남게 될 미래에 대한 그림 그려 왔으나, 어쩌다 보니 오빠가 유학을 떠나자마자 나도 곧바로 짐을 쌌고, 그렇게 이 집은 망망대해의 바위섬마냥 번잡한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남게 되었다.

#2. 친정 방문기

  기상 알람을 가볍게 무시하고 늘어지게 늦잠을 잔 후, 브런치를 먹겠다며 굳이 카페에 가서 배를 채우고는 캐리어를 끌고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평일임에도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 방학도 아닌 이 시기에 연가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더 이상을 학생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서울을 떠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첫 연가 사용과 오랜만의 서울행을 기념하여 5년간 몸담았던 학교에 들렀다. 교사의 첫 발령지를 친정이라 부른다기에 이런 친정 둔 적 없어요!’라며 격하게 거부했던 지난 과거가 무색하게, 떠난 학교를 굳이 제 발로 찾아간 셈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났음에도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주신 보안관님 덕분에, 매일 마주하던 그 모습 그대로인 예전 동료 선생님들 덕분에, 놀랍도록 똑같은 학교의 공기 덕분에 , 이래서 친정이라고 하는 건가라는, 과거의 나였다면 몸서리쳤을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3. 시간이 멈춘 곳에서

  어느덧 어둑해진 저녁, 정갈한 밑반찬에 기분이 좋아지는 고깃집에서 그 어렵다는 나 홀로 고기 먹기를 매우 만족스럽게 성공하고, 여전한 길을 걸어 오랜 둥지로 돌아왔다.

  한 달 만이다. 반쯤 비워진 책장과 침대가 빠진 자리에 놓인 잡다한 짐들, 그리고 곳곳에 덮여있는 보자기가 이 집은 사람이 머물지 않고 있음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의 온기는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챙겨갈 만큼 간절하지는 않고 버려지기에는 아까운 짐들만 남은 와중에 가족사진 서너 장이 눈에 띈다. 이 집에 마지막 온기를 채워 넣고 있는 사진을 보며 그렇게 생각에 빠져들었다.

  삼 남매가 모두 떠난 이후 시간이 멈추어 버린 이곳에서, 익숙한 듯 낯선 퀴퀴한 냄새에 빠져들어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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