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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생활5

일상) 그가 '뿌잉'이라고 했다. #1. 사건의 발단 점심시간. 학생들을 데리고 밥을 먹는 중이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밥을 먹는데 식사를 마친 연구 부장님께서 내 옆자리에 와서 앉으셨다. 그녀는 내가 첫 담임을 맡았던 해 나의 학년 부장님이셨다. NEIS(나이스, 교육행정 정보시스템)의 N자도 모르는 햇병아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담임 업무를 볼 수 있게 하셨고, 그렇게 그녀의 밑에서 자란 나는 4년이 지난 지금 학교 전체의 NEIS 시스템을 총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학교의 어엿한 일꾼으로 자라나는 나를 대견하기보다는 안쓰럽게 바라보는 그녀는, 그녀의 첫 제자보다도 나이가 어린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신다. 한동안 계속 바빴다. 어제도 퇴근 직전까지 종종거리며 뛰어다닌 내가 그녀는 내심 안쓰러웠나 보다. 위로의 말을 전하는 그녀에게.. 2020. 11. 4.
그냥 쓰는 글) 속마음 #1. 전시행정이 여기 있네 까톡. 친구가 보내온 사진 한 장. “오, 학교 시설 좋네.” “아니, 시설을 보라는 게 아니라…” “???” “복도를 자세히 봐. 높으신 분 오신다고 교실 안의 물건 다 밖으로 뺌” 그렇다. 지난밤 친구는 오늘 높으신 분, 매우 높으신 분이 학교에 오신다고 했다. 장차관을 제외하고는 교육공무원 중에 아마도 임명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신 분을 맞이하기 위해 교실의 각종 가구와 물건을 복도에 예쁘게 정렬해 놓았다. 교실 내 학생 간 ‘1m’ 간격 유지를 위해 이만큼 노력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래 봐야 복도로 쫓아낼 수 있었던 물품은 청소도구함, 우산꽂이, 쓰레기통 정도. 결국 다시 교실 안에 비치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을, 그분의 짧은 학교 방문을 .. 2020. 5. 22.
식(食) - 급식인생 n년 차(feat. 편식하는 교사)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부장 선생님의 뒤로 제가 세상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취나물 무침과 마늘종 볶음, 급식실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이토록 다른 이유입니다. 급식실 조리사님께서 취나물 무침과 마늘종 볶음을 식판 가득 담아 주셨지만, 그쪽으로는 젓가락이 단 한 번도 향하지 않습니다. 직장인에게 급식은 저렴한 식비와 균형잡힌 식단으로 굉장히 감사한 일입니다만, 교사 인생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기도 했습니다. 매년 학생들에게 편식을 고백하지만 그렇다고 학생 앞에서 교사가 대놓고 편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기에 학생과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싫어하는 반찬도 함께 먹는 괴로운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학생 없이 급식을 먹는 지금, 대놓고 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즐기는 중입니다... 2020. 4. 26.
의(衣) - 왜 월요일에만 예쁜 옷 입어요? #1. 선생님, 뭐 잊으신 거 없어요? - 2019년 1학기 어느 날 5교시는 체육입니다. 급식을 먹고 양치 겸 화장실에 들르는 김에 체육복 바지로 갈아입기로 합니다. 갈아입은 치마는 세면대 옆 공간에 고이 올려두고 양치를 합니다. 마주친 학생들과 가벼운 대화도 나누고, 화장실 앞 복도를 전력 질주하는 학생들에게 강렬한 눈빛도 날리며 양치를 마칩니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게 교실로 돌아와 TV 화면에 알림장을 띄우고 알림장을 적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시간표와 내일의 시간표, 학급일지를 참고하여 알림장을 적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을 보니 크게 잊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잠시의 휴식을 즐기려는데 한 학생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묻습니다. “선생님, 뭐 잊으신 거 없어요?” 동공이 흔들리기 시.. 2020. 4. 6.
점심 메뉴 정하기가 낯선 직장인 이야기(feat. 초등 교사) 매일 같이 긴 회의가 열리는 요즘입니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는 맞대지만 뾰족한 수는 찾지 못하는 회의의 반복입니다. 수요일 오전 10시, 여느 때처럼 한 선생님의 교실로 모입니다. 회의가 필요한 사안 한 무더기를 들고 오신 학년 부장님께서 종이 뭉치를 ‘탁’ 내려놓으시며 비장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장 중요한 것부터 정하고 시작할까요?” 옆 반 선생님께서 거드십니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저는 ‘아, 학사일정 안이 다시 나왔나?’ 기대하며 눈을 반짝거립니다. 너무 궁금했거든요, 방학을 언제 하는지.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변이 저를 둘러쌉니다. “돈까스 어때요?” “오늘 요 앞 장터 열리는 날인데, 분식?” “오랜만에 짜장면도 괜찮지요.” 아, 저는 아직 사회생활 .. 2020.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