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서래마을 일상

영화 <호프> 후기) HOPE.....less(스포일러 주의)

서랍 속 그녀 2026. 7. 17. 22:26

저녁을 먹다가 연휴를 즐길 겸 심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남편이 마침 <호프>가 보고 싶다길래,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찾아보지 않은 채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영화와 내가 평행선을 달리는 기분.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는데, 내가 무지해서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 의문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러닝타임이 흘러도 영화의 세계관은 좀처럼 와닿지 않았고, 나는 어느샌가 공허한 시선으로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긴 러닝타임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객석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남편과 나 역시 눈이 마주치자 서로 허탈하게 웃었다. 나만 당혹스러웠던 것은 아니었구나 싶어 묘한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맛이 없는(not delicious) 것이 아니라, 맛이 없는(tasteless) 것. 무엇이 이 영화를 이렇게 'less'하게 만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첫째, 서사가 없다.
기승전결의 기본적인 전개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아무런 설명 없이 추격전으로 돌입한다. 왜 시작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추격이 한 시간 가까이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기만 할 뿐, 서사는 전개되지 않는다. 두 번째 추격전도 마찬가지다. 추격의 방식이나 갈등은 발전하지 않고, 마을에서 숲으로, 다시 들판으로 장소만 바뀌고 괴수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다. 괴수와 인간의 대립은 존재하지만, 인간은 "감히 우리를 건드려?"라는 분노를, 괴수는 "내 새끼 어디 갔어!"라는 감정만 반복할 뿐 갈등이 확장되거나 해소되지 않으니, 추격의 연출이 멋짐에도 ‘또 반복이네’라고만 느껴질 뿐이다.
 
둘째, 설명이 없다.
괴수는 왜 마을에 나타났는지, 무엇을 원하는 존재인지, 괴수이자 외계인이면서 왜 지구에 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1차 추격전이 끝난 후, ‘자녀를 잃은 슬픔’으로 괴수가 폭발했다는 점은 간접적으로 보여주지만, 2차 추격전도 별다른 설명 없이 다시 반복될 뿐이다. 등장인물들은 러닝타임 내내 극한의 감정으로 부딪치지만, ‘왜’를 설명해 주지 않으니 인물과 나는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셋째, 대사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의미 있는 대사가 없다. 서사도 없고 설명도 부족한 상황에서 대사까지도 대부분이 욕설과 고성뿐이다. 체감상 대사의 97%는 욕이었다. 평생 들은 욕보다 이 영화 한 편에서 더 많은 욕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감정의 이유는 설명되지 않은 채 강도만 높아지니 긴장감보다 피로감이 먼저 밀려왔다. 마치 더 크게, 더 거칠게 욕할수록 갈등이 깊어지는 것처럼 연출한 느낌이었다. 결국 별다른 서사와 설명 없이 그저 ‘달려간’ 영화는 갑작스럽게 외계선이 폭발하고, 외계인들이 미래의 희망을 암시하는 대화를 나누며 끝났다. 후속편을 염두에 둔 결말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한 편의 완결된 영화라기보다, 3분짜리 티저 예고편을 억지로 3시간으로 늘려놓은 듯한 인상이 남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무엇이 있었냐고 한다면, 기괴함은 있었다.
 
가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임에도 서사와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과도한 성적 묘사나 기괴한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그 장면의 필요성에는 쉽게 공감되지 않는데도, 마치 수위가 높을수록, 연출이 기괴할수록 작품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처럼 평가되는 분위기가 낯설곤 했다.
 
호프 역시 그랬다. 떡밥이라기에는 회수가 충분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서사를 끌고 가는 핵심 장면도 아니었다. 충격을 주기 위한 장면은 있었지만, 그 충격이 인물을 변화시키거나 이야기를 진전시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괴함은 의미를 만들지 못한 채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대표적인 장면이 괴수를 쫓다가 친구를 괴수로 오인해 죽이는 장면이다. 급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오히려 그 사고는 인물들의 죄책감이나 갈등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사건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인물들은 잠시 당황할 뿐, 곧바로 다시 괴수를 쫓는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도 서사에 남긴 흔적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굳이 그 장면은 왜 필요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1차 추격전 이후 괴수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해부하는 인물의 태도, 과도하게 강조되는 톱질 소리와 피 튀기는 연출은 불쾌감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그 장면을 통해 괴수의 생태나 약점, 혹은 이후 전개에 영향을 줄 새로운 정보가 밝혀지는 것도 아니다. 인물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관객에게 강한 시각적 자극만 남긴 채 지나간다.
 
물론 불쾌하거나 기괴한 장면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런 연출이 이야기의 주제나 인물의 변화를 드러내는 장치라면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호프>에서는 그 충격이 서사로 연결되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는 '필요해서 기괴한 장면'이 아니라, '기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게 <호프>는 무언가가 ‘없는’ 영화였다. 난해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이해할 단서가 없어서 끝내 따라갈 수 없었던 영화였다.
 
P.S. 생명력만 보면 조인성도 외계인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