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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16

일상) 카톡, 그 이전의 매체에 대하여 ※ 본 글은 대학원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매체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3월 첫 주, 길게 늘어진 동아리 홍보 천막과 바글바글한 인파가 새로운 학년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지난한 입시를 끝내고 설렘과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표는 ‘24학번’. 이들을 바라보자니 문득 나의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고리타분하게 ‘라테는 말이야~’를 하고 싶지는 않으나 나의 신입생 시절은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11년이 바로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바야흐로 카카오톡(이하 카톡) 전성시대가 막 시작된 해였기 때문이다.  피처폰과 스마트폰 사이에서 그 무게 중심이 하루하루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에,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기 .. 2024. 4. 25.
일상) 괜히 센치해져서 적는 글 #1. 시간이 멈춘 곳 한 손에는 캐리어를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른다. 신호음과 함께 잠금이 풀리고, 익숙하나 퀴퀴함이 더해진 냄새가 흘러나왔다. 열린 문틈으로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적막한 공기가 느껴졌다. 한 달 만이다. 주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짐만 덩그러니 남은 채 텅 비어있는 이곳은 한때 우리 삼 남매의 둥지였고, 더 먼 과거에는 우리 다섯 식구의 보금자리였다. 그저 집을 정리하고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큰 그림이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0년 전 우리 가족이 서울을 떠날 때 정리되지 못한 채 남겨진 이 집은 세월이 흘러 삼 남매의 둥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어 애틋한 이 집은, 과거에 서울을 떠난 우리 가족을 대신해 묵묵히.. 2021. 10. 30.
일상) 어디부터 불편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1. 불편한데, 불편하다고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뜨르르륵. 삑삑삑-” 적막한 집,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무심한 기계음을 통해 동거인이 무사히 귀가하였다는 소소한 안도감을 느끼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편안함을 느낀다. 도어락. 누구나 손댈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손대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웬만한 친분으로 상대의 집에 드나들 수는 있어도, 어지간한 친분이 아니면 감히 손댈 수 없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어 약속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 약속이 깨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차가운 기계음은 따뜻한 신호음이 된다. “뜨르르륵. 삑삑삑-” 적막한 집,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차가운 기계음이 귀에 꽂히며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오빠는 부.. 2021. 1. 25.
일상) 카페인 청정구역이 무너지다 #1. 따뜻한 모카면 얘기가 다르지. 방학을 맞이하여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그래도 9시에는 일어나야지’하며 맞춘 알람을 10분씩 늦추다 보니 어느덧 10시, 그래도 일어나기가 싫다. 아직 침대와 한 몸인 내게 잠시 어딘가를 다녀온 듯한 오빠가 묻는다. “커피 한잔할래?” “나 커피 안 마시잖아.” “따뜻한 모카면 얘기가 다르지.” “뭐래.” #2. 내 몸은 카페인 청정구역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는 ‘맥심’을 즐겨 마셨는데, 언제부턴가 커피를 마시고 난 후의 텁텁한 느낌과 원두 냄새가 싫어졌다. 그렇게 커피를 끊은 지 어언 10년. 평균 섭취량은 1년에 한 잔 정도. 정말 거절하기 힘들 때 한 모금씩 마신 결과다. 고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에 맥심 한 잔을 마시면, 자습 시간에 그렇.. 2021. 1. 5.
일상) 알부자가 될 예정입니다. #1. 알부자가 될 예정입니다 미운 7살부터 이팔청춘, 낭랑 18세, 반오십을 차곡차곡 지나 어느덧 계란 한 판을 앞두고 있다. 강산 정도는 변해줘야 겨우 바뀐다는 그 앞자리가 몇 시간 후에 바뀐다. 뭐 달라질 것 있겠냐 싶으면서도 할 수만 있다면 ‘나이 듦’은 거부하고 싶다. 몇 달 전부터, 아니 1년 전부터 내내 축하를 받아왔다. 29살이 되면서부터 미리 ‘30살’도 축하받았다. 1년 내내 꾸준하게 ‘내년이면’, ‘6개월 뒤에’, ‘3개월 뒤에’, ‘곧’, ‘다음 달에’, ‘보름 뒤에’ 맞이할 서른을 축하받았다. 그 축하 속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바로 ‘계란 한 판’이다. 한국인의 情인지, 무려 ‘서른’인데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계란 한 판을 선물해주겠다’라는 인사말이 심심치 않게.. 2020. 12. 31.
일상) 그가 '뿌잉'이라고 했다. #1. 사건의 발단 점심시간. 학생들을 데리고 밥을 먹는 중이다.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밥을 먹는데 식사를 마친 연구 부장님께서 내 옆자리에 와서 앉으셨다. 그녀는 내가 첫 담임을 맡았던 해 나의 학년 부장님이셨다. NEIS(나이스, 교육행정 정보시스템)의 N자도 모르는 햇병아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담임 업무를 볼 수 있게 하셨고, 그렇게 그녀의 밑에서 자란 나는 4년이 지난 지금 학교 전체의 NEIS 시스템을 총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 학교의 어엿한 일꾼으로 자라나는 나를 대견하기보다는 안쓰럽게 바라보는 그녀는, 그녀의 첫 제자보다도 나이가 어린 나를 많이 예뻐해 주신다. 한동안 계속 바빴다. 어제도 퇴근 직전까지 종종거리며 뛰어다닌 내가 그녀는 내심 안쓰러웠나 보다. 위로의 말을 전하는 그녀에게.. 2020. 11. 4.
일상) 코로나, 그리고 학교생활 학생들이 8번째 등교이자 방학 전 마지막 등교를 한 오늘, 퇴근길에 “등교 후 확진 아동 111명, 학교 내 전파 추정 1건”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어느 곳보다 코로나 감염에 취약하다고 우려되던 학교였지만, 이 정도면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포기하고 방역을 제1순위로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코로나와 학교생활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1. 학교와 감염병 특정 시기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보도되는 뉴스가 있다. 독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것. 학교에 근무하기 전에는 이런 뉴스는 그저 딴 세상 얘기인 양 듣고 흘려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살면서 감염병에 걸려 고생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 2020. 7. 29.
일상) 넌 감동이었어 #1. 코로나와 학교생활 주 1회 등교 중이다. 그나마도 1교시 시작 시각을 앞당기고 블록타임제(쉬는 시간 없이 연달아 두 시간을 수업하는 것)를 운영하여 5교시 수업 후 점심을 먹고 바로 하교하도록 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가방을 메고 급식실로 내려가 밥을 먹은 뒤 자율적으로 하교하도록 지도했겠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그렇지 못하다. 방역 구멍이 뚫리기 가장 쉬운 급식실에 먼지 덩어리 가방을 들고 가게 할 수 없다는 점과 하교 시 여러 반의 신발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에서 거리 두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방은 급식실 가는 길에 신발장 위에 두면 되는데, 문제는 신발장에서의 거리 두기다. 신발장 앞에서 거리 두기를 지도할 사람이 필요하다. 사춘기 6학년의 튼튼한 장기 덕분인지, 얼.. 202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