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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45

서랍8-1) 벨기에 - 농담이 진짜가 되었다 20130507의 일기 #1. Arno는 기차역에서 Arno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늘 그의 집에서 1박을 하고 내일 함께 스위스로 떠난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그와의 인연을 떠올려 본다. 2012년 핼러윈,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 클럽을 마다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무리에 그와 내가 있었다. 우리는 ‘LOVE(LOng term Volunteer Experience) KOREA’라고 불리는, 30여 명의 다국적 참가자들이 2~3명씩 팀을 이뤄 3개월간 지역 사회봉사 및 문화교류를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었다. 전국 각지로 흩어진 참가자들이 중간 평가를 위해 서울로 모인 오늘, 각국의 젊은이들은 이태원 클럽으로 향했다. 애늙은이던 나는 ‘무려’ 핼러윈의 이태원 클럽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여 이른 귀가를 .. 2020. 12. 31.
서랍7-2) 프랑스 파리 - 그래도 이곳을 떠나고 싶다 20130506의 일기 #1. 그래도 이곳을 떠나고 싶다 거쳐 가는 곳일 뿐이다. 지금 내게 파리가 주는 의미는 그렇다. 숙소도 2박만 예약을 했다. 오늘 재정비하며 쉬고 내일 바로 떠나겠다는 뜻이다. 밀린 빨래를 하고 가방 정리를 하며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내일 스위스로 향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이번 주말에 함께 하이킹하기로 한 스위스 친구의 연락이다. 주말 내내 비가 올 예정이니 일정 조율이 가능하다면 스위스는 다음에 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말처럼 자연 그 자체인 스위스를 굳이 비가 오는 걸 뻔히 알면서 가기는 아쉽다. 갑자기 일정이 붕 떠버렸다. 숙박을 연장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지금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낭만의 도시, 파리에 있다. 몇 날 며칠을 보낼 거리는 차고도 넘친다.. 2020. 12. 28.
서랍7-1) 프랑스 파리 - 지갑이 사라졌다. 20130505의 일기 #1. 지갑이 사라졌다. 자정이 넘은 시각, 파리 시내의 한 지하철역이다. 12시간 넘게 이동을 한 지금, 피곤함보다 긴장감이 앞선다. 깜깜한 새벽에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메고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빨리 숙소에 도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찰구를 지나기 위해 지갑을 찾는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던 그 지갑이 손에 닿지 않는다. 어? 보조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옷 주머니를 살핀다. 앞으로 멘 가방을 살핀다. 다시 거꾸로 앞으로 멘 가방을 살핀다. 옷 주머니를 살핀다. 보조 가방을 뒤진다. 사라졌다, 내 지갑이. 지금, 이 순간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 지갑 안에 지하철 표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더 당혹스럽다. 무임승차로 오해받아 벌금을 물게 .. 2020. 12. 27.
서랍6-15) 모로코 셰프샤우엔- 파란 나라를 보았니? 20130504의 일기 #1. 파란 나라를 보았니? 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희망이 가득 찬 파란 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꿈과 희망이 가득 찬 파란 나라가 실제 한다면 분명히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일명 블루시티(blue city)로 불리는 이곳은 셰프샤우엔(Chefchauen), 어느덧 모로코 여행에서의 마지막 도시이다. 모로코 도착 첫날, 겁에 질려있는 나와 함께 저녁을 먹어 주었던, Police라 굳게 믿었으나 Police가 아니라 Polish였던 그 커플이 가장 기대된다고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지나온 모로코의 많은 도시는 채도가 낮았다. 어느 곳에서든 어느 색이든 묘하게 ‘사막의 색’이 더해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밝고 톡톡 튀는 느낌보다는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지.. 2020. 12. 26.
서랍6-14) 모로코 페스 - 눈을 떠보니 식당이었다. 20130502의 일기 #1. 눈을 떠보니 식당이었다. 깊은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는데, 낯선 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Hi, good morning!” 눈이 마주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심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살짝 머쓱한 듯. 테라스에서 눈을 뜨는 일은 별일 아니라는 듯. 하룻밤을 보낼 테라스가 본디 식당이라는 얘기는 어제 숙소 직원에게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이 장소가 식당이라는 게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이 되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이제 그 문장이 가지는 의미를 알겠다. 잠은 테라스에서 잤지만, 눈은 식당에서 뜬다는 것. 나에게는 침대인 소파가 그들에게는 식당 의자라는 것. 침대였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소파를 의자 삼아 앉고 자연스럽게 아침 .. 2020. 10. 1.
서랍6-13) 모로코 페스 - 제가 한 번 자보겠습니다, 테라스에서 20130501의 일기 #1. 사막의 아침 별똥별 쏟아지던, 낭만 가득했던 사막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일몰을 보며 들어간 사막을 일출을 보며 나왔다. ‘아, 화장실’ 또다시 낙타의 등에 기대 터덕터덕 사막을 빠져나오는 내 기분이다. 장장 12시간 넘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현실이 내 생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감상을 이겼다. 민트향 가득 뿜은 양치, 몸 구석구석 자리 잡은 모래알을 뽀드득뽀드득 씻어낼 수 있는 샤워,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 그 자체. 너무 간절하다. 사막과 헤어지는 지금, 나는 무엇보다 화장실이 간절하다. #2. 제가 한 번 자보겠습니다, 테라스에서 141일의 여행에 ‘계획’도, ‘정보수집’도 없다. 장기 여행인지라 계획을 세우려면 끝도 없을 것 같.. 2020. 9. 4.
서랍6-12) 모로코 사하라사막 - 이것이 바로 사막의 낭만 20130430의 일기(3) 앞 이야기 : 20130430의 일기(1) / 20130430의 일기(2) #4. 대자연의 본모습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등산도 좋고, 계단 오르기도 좋다. 오를 때 살짝 숨이 차는 것도 좋고, 오른 자에게만 주어지는 그 풍경도 좋다. 각 여행지에는 전망을 보기 좋은 명소가 있다. 언덕 위의 공원일 때도 있고, 성당의 첨탑일 때도 있다. 웬만하면 다 올라보려고 한다. 깊은숨을 내쉬며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는 게 좋다. 이곳 사막에서는 잘 모르겠다. 이미 어둑해진 이곳, 불빛이라곤 텐트 밖에 피워놓은 모닥불이 전부인 이곳에서 언덕을 오른다고 무엇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르라니 올라본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인지라 몇 걸음 오.. 2020. 8. 23.
서랍6-11) 모로코 사하라사막 - 무엇이든 답변해 드립니다. 20130430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430의 일기 (1) #3. 무엇이든 답변해 드립니다. 사막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하룻밤을 보낼 텐트를 등지고, 간이 테이블에 앉아 저녁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느새 해가 져 어둑어둑한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리 눈동자를 굴려도 화장실 따위는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저녁 식사를 앞두고, ‘물을 마시면 안 된다’와 ‘아, 참! 마실 물도 없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를 고민하는데, 건너편에 앉은 한 아주머니가 내게 관심을 보여왔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오, 한국 사람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한국인 Q&A 응답 전문 여행객으로서, 이번에는 어떤 질문일지 궁금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2020.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