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01의 일기
#1. 사막의 아침
별똥별 쏟아지던, 낭만 가득했던 사막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일몰을 보며 들어간 사막을 일출을 보며 나왔다.
‘아, 화장실’
또다시 낙타의 등에 기대 터덕터덕 사막을 빠져나오는 내 기분이다. 장장 12시간 넘게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현실이 내 생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감상을 이겼다.
민트향 가득 뿜은 양치, 몸 구석구석 자리 잡은 모래알을 뽀드득뽀드득 씻어낼 수 있는 샤워, 그리고 무엇보다 화장실 그 자체. 너무 간절하다.
사막과 헤어지는 지금, 나는 무엇보다 화장실이 간절하다.
#2. 제가 한 번 자보겠습니다, 테라스에서
141일의 여행에 ‘계획’도, ‘정보수집’도 없다. 장기 여행인지라 계획을 세우려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정보를 모으려면 정보 바다에 허덕일 것 같아서는 핑계다. 그냥 귀찮아서가 정답이다. 나라는 사람, 10일 여행이라고 딱히 계획을 세우거나 정보를 모으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여행을 하다 보면 의외의 방법으로 정보가 모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이 하나씩 생긴다. ‘여기에 가면 이걸 해봐야지~’ 하는 그런 소소한 계획.
페스(Fes), 가죽 공장으로 유명한 이곳에 오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테라스에서 자기. 가죽 공장이 유명한 곳에 가면서 ‘테라스에서 1박 하기’가 웬 계획이냐 싶겠냐 만은, 나는 여기에 꽂혀버렸다. 이 계획의 기원은 탕헤르에서의 1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이라 철썩 믿었던, 그러나 알고 보니 Police가 아니라 Polish였던 그 커플과의 만남으로.
서로 모로코 첫날이었던 지라 저녁 식사를 하며 일정 공유를 했더랬다. 어디에 갈 건지, 어떤 순서로 움직일 건지 뭐 그런. 그때 그 커플이 스쳐 지나가며 해준 말이 있다. 페스에는 ‘테라스에서 자면 숙박비를 50% 할인해주는 숙소가 있다’라는 것. ‘테라스’에서 잠을 잔다는 것에 한 번 꽂혔고, 숙박비를 50% 할인해준다는 것에 또 한 번 꽂혔다. 두 번 꽂혔으니 이건 해봐야 한다.
페스에 도착한 이후 몇 개의 숙소를 돌았다.
“테라스에서 잘 수 있어요?”
특정 숙소만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페스’ 지역의 숙소 특징이라길래 모든 숙소에서 다 테라스 숙박을 제공할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나 보다. 세 번째던가, 네 번째 숙소에서 드디어 ‘가능하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 밤. 제가 한 번 자보겠습니다, 테라스에서.
[함께 읽으면 좋은 글]
'테라스에서 1박하기'라는 계획을 세우게 해준, 폴란드 커플과의 만남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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