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30의 일기(3)
앞 이야기 : 20130430의 일기(1) / 20130430의 일기(2)
#4. 대자연의 본모습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등산도 좋고, 계단 오르기도 좋다. 오를 때 살짝 숨이 차는 것도 좋고, 오른 자에게만 주어지는 그 풍경도 좋다.
각 여행지에는 전망을 보기 좋은 명소가 있다. 언덕 위의 공원일 때도 있고, 성당의 첨탑일 때도 있다. 웬만하면 다 올라보려고 한다. 깊은숨을 내쉬며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는 게 좋다.
이곳 사막에서는 잘 모르겠다. 이미 어둑해진 이곳, 불빛이라곤 텐트 밖에 피워놓은 모닥불이 전부인 이곳에서 언덕을 오른다고 무엇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르라니 올라본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인지라 몇 걸음 오르지 않아 이내 지친다.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데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주위가 어두워 잘 보이진 않지만, 옷차림으로 보아 현지 가이드 중 한 명인 것 같다. “Thanks”로 고마움을 표하고 그가 내민 손을 잡는다. 오르기가 한결 쉽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던 내 예상과는 달리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한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밝은 별과 저 멀리 다른 여행팀의 모닥불 덕분이다. 사막은 잔잔했다. 그래서 문득 무서워졌다. 사막의 언덕은 강한 바람 때문에 위치가 항시 바뀐다고 들었다. 일행을 놓치고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내 모습을 상상하다가 몸서리를 쳤다. 잔잔함 뒤에 숨어있는 자비 없는 대자연의 본모습을 잊으면 안 된다.
#5. 사막 인의 자기 PR 방법
숨을 고르며 그의 얘기를 듣는다. 손을 내민 그 순간부터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어느덧 그가 가진 자산까지 흘러갔다.
규모가 큰 농장에서 다양한 가축을 기른다고 했다. 어떤 가축이 얼마나 있는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말해주는 그. 가족이 함께 농장을 경영하고, 자기는 가이드 일을 겸한다고 했다. 그가 도시인이었다면 ‘어느 회사에 일하고 있으며, 우리 가족은 어떤 일을 하고, 땅이 어디에 이 만큼 있다’라고 소개했으려나.
낯설다. 사막 인의 자기 PR 방법이.
#6. 이것이 바로 사막의 낭만
모닥불 앞에서 펼쳐진 공연이 끝나고 어느덧 정적이 찾아왔다. 들어갈 사람은 들어가고 남을 사람만 남은 이곳, 조용한 이 분위기가 좋다.
깊은 밤, 밤하늘을 바라보며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
내가 이전에 별똥별을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황홀하다. 환하게 반짝이는 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별똥별이.
혼자 보기 아깝다. 처음으로 이곳에 혼자 온 게 후회스러웠다. 누군가 함께면 좋겠다.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 감상을, 지금, 이 순간을.
괜히 감상에 빠져 울적해지려는 지금, 문득 이 순간을 함께 할 상대가 떠올랐다. 깜빡 잊고 있었다. 내게도 여행의 동반자가 있었다는 것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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