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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UAE

서랍1-2) UAE 아부다비 - 파키스탄에서 온 그

by 서랍 속 그녀 2020. 2. 10.

20130326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326의 일기(1)

#4. 마리나 몰로 향하는 길

  마리나 몰로 향하는 길이다. 그랜드 모스크에서 다시 30분을 걸어 나왔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길을 지나가던 운전자가 자동차 창문을 내린다. 어디로 가냐고 묻는다. 택시를 타려던 것은 아니기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차에 타란다. 모르는 척을 했다. 그는 몇 번 더 질문을 던졌지만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차를 움직여 가버렸다. 아니, 가버린 줄 알았다. 그는 저 앞에 차를 세우고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한참 실랑이를 했다. 자기는 택시 기사가 아니라며, 태워다주겠다는 그와 버스를 타면 된다고 버티는 나. 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서는 나를 이렇게도 귀찮게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단호하게 말했다.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고. 아니, 사실 도움이 필요했다. 누군가 그를 나로부터 떼어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10분 넘게 실랑이를 벌였음에도 길가는 행인 중 누구도 우리의 실랑이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버스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그는 버스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버스 정류장이 맞다. 마리나 몰로 가는 버스 번호도 확인했다. 그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30분이 넘게 버스가 안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그의 차에 올라탔다. 더 이상 실랑이를 하기 귀찮았고, 만약의 사태가 생겼을 때, 그는 내가 방어할 수 있는 정도의 체격이라고 생각했다. 차에 올라타서도 한껏 틱틱거리던 나는 어느새 마리나 몰에 도착해 있었다.

#5. 에메랄드 빛 바다

  미안했다. 그의 의도를 곡해한 게 미안했고, 한껏 틱틱거린 것도 미안했다. 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덕분에 편히 왔다고, 인사를 하고 가려는 나에게 그가 기다리겠다고 했다. 충분히 구경을 하고 오란다.

  두 번째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여기서 오랜 시간을 보낼 거라고 했다. 그도 괜찮다며,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언제 친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두 번째 실랑이도 그가 이겼다.

  애초에 쇼핑몰을 구경하러 온 것은 아니었기에,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에메랄드 빛깔이 영롱한 바다였다. 처음 보는 바다색이었다. 그와 나란히 앉아서 한참 동안 바다를 감상했다.

#6. 파키스탄에서 온 그

  한참 바다를 바라보다가 그에게 처음으로 질문을 해보았다. 어디서 왔는지, 왜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지.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했다. 돈을 벌어서 고향에 있는 엄마와 누이에게 생활비를 보낸다고 했다. 정류장에서 땡볕을 받으며 홀로 서 있는 이방인을 보니 여기에 처음 와서 외롭고 힘들던 때가 생각나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내 모습이 그렇게나 안쓰러워 보였나 싶어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고향에 있는 엄마 얘기, 누이 얘기를 들었다. 몇 달 후에는 이탈리아로 가서 일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거기서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타지에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만 고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괜찮다고 했다. 고향에 있는 그의 가족이 그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기를.

#7. 여행의 동반자가 생기다.

  마리나 몰을 나서는 길에 그가 잠깐 들를 곳이 있다며 차를 세웠다. 나를 차에 남겨두고 어딘가에 다녀온 그는 나에게 검은 고양이 인형을 건넸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외로우니, 이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라고 했다. 나와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함께한 그 고양이 인형은 이렇게 내 품에 오게 되었다.

#8. 다시 공항으로

여행의 동반자와 함께한 저녁 식사

  공항으로 돌아왔다. 밥을 사겠다고 했으나 그는 오후 일을 가봐야 한다며 길을 나섰다. 나의 무탈한 여행을 기도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그렇게 떠났다.

  카페에 앉아 내 여행 동반자를 탁자에 앉히고, 샌드위치를 시켰다.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겨우 초저녁이었다. 비행기 대기시간은 아직도 대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노트북을 켰다.

  집을 떠난 이야기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줄줄 써 내려 갔다. 있었던 일을, 느꼈던 감정을, 앞으로의 기대를 써 내려갔다. 나의 이야기는 어느덧 3쪽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내 여행의 첫 번째 서랍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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