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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141일 여행의 시작

유럽 141일, 여행 전 이야기

by 서랍 속 그녀 2020. 2. 8.

#1. 2013년의 나는

  2013년의 나는 휴학생이었다. 복학까지는 한 학기가 남아있었고, 배낭여행이야말로 대학생의 로망이라고 믿고 있었다. 누군가 초보 배낭여행자에게 유럽이 가장 적합하다 했고, 마침 나에겐 바로 지난 학기에 봉사활동을 통해 사귄 유럽 친구도 몇 명 있었다. 그렇게 남은 한 학기를 보낼 계획이 마련되었다. 유럽 배낭여행이자 장기배낭여행.

#2. 여행 계획 세우기

  매일 침대를 뒹굴며 머릿속으로 유럽 지도를 그려보았다. 어디를 어떻게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런던으로 들어가서 이스탄불로 나오면 유럽을 적당히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비행기 표를 검색해보다가 국제학생증을 만들고, KISES에서 표를 발권하기로 했다. 비행기 표가 가장 싼 날 출국하고, 다시 가장 싼 날 귀국하려다 보니 여행 날짜는 자동으로 확정되었다. 3월 26일 출국, 8월 13일 귀국. 여행 기간 141일. 출국까지 3주가 남았다.

  중간고사 3주 전부터 시간대별로 공부 계획을 매우 꼼꼼하게 세우지만, 그걸 지키지 않아 매번 계획만 새로 세우던 학생, 계획을 '잘' 세울 줄 알지만 그 계획을 지키는 의지와 실천력은 부족한 학생, 그게 나였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된 나는, 나라는 사람이 계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꼼꼼한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한 것은 이정도 였다.

- 왕복 비행기 표

- 첫 도시인 런던에서의 숙박

- 아이슬란드 국제워크캠프 참가 신청과 런던-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파리 비행기 표

#3. 여행 경비 1100만원

  항상 '공부는 혼자 힘으로 하는 거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을 졸라서 처음으로 종합학원에 다녀봤고, 누가 나의 공부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어서 3개월 만에 그만뒀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줄곧 혼자 공부를 했고, 고3이 되었을 때, 아빠가 이렇게 제안하셨다.

  "마지막까지 지금처럼 혼자 공부를 하면, 포상으로 500만 원을 주겠다."

   할아버지 9남매, 아빠 7남매. 그야말로 대가족이다. 명절이면 할아버지 댁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친척이 모였고, 모두 나의 대학 입학을 축하해주셨다. 세배를 드릴 때마다 어른들께서는 등록금에 보태라고, 노트북을 사라고, 예쁜 옷을 사 입으라고 나에게 봉투를 쥐어주셨고, 그 해에 세뱃돈으로 200만 원을 받았다. 

  그렇게 20살의 나는 통장에 700만 원이나 있는 부자 대학생이 되었다.

  1년 반 동안 대학교를 다니면서 간간이 과외를 했다. 생활비는 아빠가 주신 덕분에 내가 번 돈은 고스란히 모을 수 있었고, 딱히 유흥을 즐기지도, 예쁜 옷을 사 입지도 않던 나는 과외로 200여만 원을 모았다. 그렇게 여행을 앞둔 내 통장에는 900여만 원이 들어있었고, 아빠는 여행 중에도 여느 때 처럼 매달 생활비를 주겠다고 하셨다.

  900만 원 + 35만 원*5=165만 원, 약 1100만 원. 내 여행 경비는 이렇게 마련되었다.

 

#4. 여행 시작

  22살의 휴학생이던 그 시절,  앞뒤로 크고 작은 배낭을 들춰 메고, 왕복 비행기 표와 여행 경비 1100만 원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5. 서랍 속 여행 이야기

  짐이 무거운 와중에도 꾸역꾸역 챙겨간 노트북에 매일 밤 적어내려갔던 일기를, 서랍 속 서류를 정리하듯 하나씩 다시 꺼내어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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