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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모로코

서랍6-1) 모로코 탕헤르 - Police와 밥을 먹는다고요?

by 서랍 속 그녀 2020. 5. 17.

20130423의 일기

#1. 여기는 모로코입니다.

  일몰이 다가와 어둑한 그늘이 진 도로, 바삐 오가는 인파 속에 동양인 여자 한 명이 배낭을 메고 우두커니 서 있다. 예상치 못하게 이곳을 마주한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ㄱ 오빠의 정보에 따르면 공항에서 바로 아실라(Assilah)로 가는 버스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공항에서 아실라로 가는 버스는 찾을 수 없었고, 시간이 늦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탕헤르(Tanger) 도심으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뾰족한 수 없이 버스 기사님이 내리라는 곳에 내렸고, 곧 인파에 휩싸였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 홀로 정지화면인 내게 호객꾼 한 명이 달라붙었다. 호객꾼과의 실랑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는 지금 나를 구해줄 단 하나의 동아줄이다. 호스텔을 원한다는 내게 알겠다라고 답했던 그는 나를 호텔로 인도했고, 굳이 필요 이상의 좋은 방을 상상 이상의 비싼 가격에 묵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다른 수가 없는 것을.

#2. 상상의 나래 펼치기

  Matt의 집을 떠난 이후로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던 침대다운 침대가 내 눈앞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달콤한 침대의 부름에 응하지 못하고 모퉁이에 걸터앉은 나는 방문을 뚫어져라 째려보는 중이다. 귓가를 윙윙거리는 ㄱ 오빠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탕헤르는 항구도시라서 다른 곳보다 좀 더 위험하니 웬만하면 도심으로 가지 마.”

  “탕헤르는 위험하니 도심으로 가지 마.”

  “탕헤르는 위험하니

  “위험

  위험한 곳에 와버렸다. 앞뒤로 가방을 들쳐메고 계획도 없이 141일의 여행을 시작한, 당차 보이는 이 여행객은 사실 겁쟁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지만, 사람이 무서운 그녀는 독방의 적막함과 바깥의 소란함이 대비되어 만들어내는 오묘한 분위기에 잔뜩 겁을 먹었다.

  호객꾼에 이끌려 온 이 호텔은 안전한 곳일까, 저 방문의 잠금장치는 자기 역할을 해주기는 할까, 씻고 싶은데 씻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배가 고픈데 밖에 나가서 저녁을 사 먹어도 될까 등 오만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옭아맨다.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를 좀 해봐야겠다. 이왕이면 여행객이면 좋겠다. 나를 안심시켜줄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심호흡과 함께 방을 나선다.

#3. Police와 밥을 먹는다고요?

  방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한 커플과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그들 역시 나처럼 이곳의 치안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는 나의 말에, 그들은 자기들도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니 함께 가자고 해주었다. 아까 잠시 숙소를 나섰다가 이곳에서 만난 경찰도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며, 잘됐단다.

  '경찰과 밥을 먹는다고? 이곳 치안은 길거리에서 만난 경찰이 여행객과 밥도 같이 먹어줄 정도로 위험한가?'

  경찰과 함께한다는 그들의 말은 다시 한번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도대체 이곳의 치안은 어느 수준이길래…….

  “경찰이랑 같이 밥을 먹는다고요?”

  다시 한번 되묻는다.

  “, 우연히 만났는데, 아직 저녁 안 먹었대서 같이 먹기로 했어요. 곧 만나기로 했으니 같이 가요.”

  돌아온 대답은 똑같다. 경찰과 함께 먹는 저녁이라니 적어도 마음은 놓였다. '자기들과 같은' 경찰이라며, 우연히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는 말에 , 경찰 커플이구나. 그래도 낯선 곳의 치안은 나만큼이나 걱정하는구나. 하긴, 경찰도 사람이니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 앞에서 만난 경찰은 하얀 피부에 옅은 갈색 머리를 가진 백인이었다. 뭐지, 금발 백인의 모로코 경찰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경찰에게 인사를 건넨다.

  저녁을 먹으며 한참의 대화가 오간 뒤, 뒤늦게 깨달았다. Police가 아니라 Polish인 그들의 정체를. 민망함에 혼자 조용히 웃음을 삼키며 지나간 대화를 복기했다. 이제야 하나씩 맞춰지는 대화의 흐름. 수많은 신호가 있었음에도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했다. 금발의 백인을 현지 경찰이라고 믿을만큼, 그만큼 듬직한 Police가 간절했나 보다.

  아무튼, 경찰은 아닌 평범한 여행객들 덕분에 마음 편하게 저녁은 잘 먹었다.

  모로코 여행의 첫 장을 함께해준 Polish couple의 무사 여행을 기원하며 여섯 번째 서랍을 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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