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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모로코

서랍6-3) 모로코 아실라 - 여기가 바로 파라다이스

by 서랍 속 그녀 2020. 6. 4.

20130425의 일기

#1. 다시 또 함께

  모로코에서 맞는 두 번째 아침, 오늘도 역시 새벽의 고요함을 깨는 아잔(Azzan, 하루에 다섯 번 예배 시간을 알려주는 일종의 노래) 소리에 잠에서 깼다. 모로코에서 첫 아침을 맞았던 어제는 아잔 소리에 화들짝 놀랐더랬다.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경건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꼭 심각한 일이 터졌음을 알리는 것 같아 어찌나 조마조마했던지. 아잔의 존재와 기능을 알게 된 오늘은 덤덤하게 아잔 소리에 맞춰 몸을 일으킨다. 모로코에서 지내는 동안 아침 알람은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어제 Fouad는 내게 자신이 아침을 먹을 식당을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있을 테니 나도 그곳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제 그에게 고백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나는 그 식당의 위치를 기억하지 못한다. 심각한 길치이자 방향치인 나는 좁은 골목골목이 이어지는 이곳에서 나의 숙소도 스스로 찾지 못한다. 물론 식당 이름을 기억하고 있기에 행인에게 물어물어 식당을 찾아갈 수는 있으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기에 굳이 그렇게 찾아가지는 않기로 했다. 식당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는 어제 분명히 밝혔으니, 그가 나를 기다리지는 않기를 바라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딘다. 상쾌한 아침, 고요한 이곳에 맞는 음악을 골라 듣고 싶지만, 인터넷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 미리 받아놓은 몇 안 되는 곡을 돌려 들으며 아쉬움을 달랜다. 다시 보니 또 새로운 벽화를 구경하며 평화로움을 즐기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친다. 너무 깜짝 놀라 엄마를 찾으며 뒤를 돌아보니 Fouad가 서 있었다. 이렇게 만나 버렸으니, 오늘도 그와 함께다.

#2. 모로코의 재래시장, Suk

  Suk, 아랍어로 시장을 뜻한다. 마침 목요일인 오늘, 장이 열린다고 하니 구경을 가보기로 했다. 모로코의 시장은 우리나라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는 낙타가 다른 점이었다면 다른 점이었겠다. 어느덧 위화감 없이 낙타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시장 구경인지 낙타 구경인지 모를 구경을 이어가는데, 오렌지 주스를 파는 가판대가 나왔다.

Suk의 주변 풍경
Suk의 주변 풍경. 아마도 Suk에서 거래되는 많은 물품이 저 낙타의 등에 얹어져 운송되었겠지.

  순도 100% 오렌지 주스는 모로코의 자랑이자 모로코 여행의 핵심이다. 드디어 마주한 오렌지 주스 가판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섰다. 5DH(디르함, 700)에 오렌지 4~5개가 통째로 들어간 오렌지 주스를 받았다. 가격에 한번 놀라고, 주스 한 잔에 들어가는 오렌지의 개수에 놀라고, 톡톡 터지는 식감이 주는 주스의 상큼함에 또 놀라는 나를 Fouad는 무얼 그렇게 놀라냐며 별것 아니라는 듯 무심했다. 주스를 홀짝홀짝 마시며 이 오렌지가 한국에서 얼마나 비싼 줄 아냐며,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 할 주스라고 항변했지만, 그는 오렌지가?’ 하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나는 앞으로 모로코를 떠나기 전까지 11 오렌지 주스를 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3. 여기가 바로 파라다이스

  Fouad가 그렇게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그 바닷가로 가는 길이다. 곳곳에 핀 들꽃과 잔디가 꼭 동화책에 나오는 동산을 떠올리게 했다. 동화책 같은 풍경을 감상하며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언덕 사이로 푸른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옆으로 펼쳐진 동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바다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에 감탄했다. ‘파라다이스라던 그의 표현에 수긍하며.

파라다이스 해변 가는 길. 여기가 바로 '파라다이스' 였다.
소가 바닷가를 거닐어도 낯설지가 않다.

  해변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멍하니 바닷가를 바라보는데 한 커플이 내게 알은 척을 해왔다. 어제 숙소 앞에서 마주쳤던, 리투아니아에서 온 그 커플이다. 작은 마을이니 오며 가며 다시 만나자고 했었는데, 이렇게 진짜 다시 만나다니. 반가운 마음에, 마침 펼쳐놓은 다이어리에 그들의 이름을 한글로 예쁘게 적어서 건네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다시 만날 훗날을 기약하며. 고작 몇 시간 후인 일기를 적고 있는 지금, 고사이 그들의 이름을 까먹어 버린 건 비밀이다.

#4. 헤어짐

  Fouad와 함께 아실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덕분에 마을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음에 고마움을 표하며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한국에 오면 나의 고향인 듯 고향은 아닌, 이곳과는 사뭇 다른 매력의 바다로 둘러싸인 부산을 구경시켜주겠다 약속하며 메일 주소를 건넸지만, 이날 이후 그에게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

Fouad와 함께 한, 아실라에서의 마지막 식사

  쏜살같이 흘러버린 이틀의 시간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이 마음에 들지만, 하루 더 머물며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지만, 출국 비행기 표에 맞게 모로코를 한 바퀴 돌려면 어쩔 수 없다. 훗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아쉬움을 뒤로하며 늦은 밤, 풀었던 짐을 다시 정리한다.

  안녕, 아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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