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 여행 이야기/모로코

서랍6-2) 모로코 아실라 - 세계 속의 대한민국

by 서랍 속 그녀 2020. 5. 25.

20130424의 일기

#1.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 아실라(Assilah)

  예정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이곳, 아실라. 탕헤르 남쪽의 작은 바닷가 마을인 아실라는 모로코의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이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곳을 거쳐 간 여행객은 모로코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으로 아실라를 꼽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이곳은 모로코 여행의 숨은 보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을 여행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저 골목골목을 거닐며 평화로움을 즐기면 된다. 하얀 벽에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고, 담을 에워싼 넝쿨을 살피다 보면 길을 잃는다. 그렇게 길을 잃고 정처 없이 걷다가 지났던 곳을 다시 보면 또 새롭다. 목적지를 두지 않고 한가롭게 걷는 순간을 즐기는 것이 이곳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아실라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펜드로잉을 배울 때 그렸던 작품. 일주일에 2시간 씩 잔잔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는 게 큰 즐거움이었는데, 작가님의 이사로 아쉽게도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2. 세계 속의 대한민국

  대한민국. OECD 경제 대국이자 SAMSUNG과 HYUNDAI, LG의 나라. 전 세계에 명성을 날리는 여러 스포츠 스타를 배출한 나라이자 세계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한류의 근원지.

  하지만 현실에서 대한민국 이름 네 글자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2013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은 ‘전쟁 위험이 있는 나라’ 혹은 ‘Psy의 Gangnam style’의 나라일 뿐이었다.

  2013년의 남북관계는 긴장감이 흘렀고, 외부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은 한 층 더 심각했다. 지난 한 달간 스친 여러 공항에서는 반짝거리는 SAMSUNG 텔레비전이 나를 반겼고, 하나같이 ‘매우 심각한 목소리’로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전쟁 위험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우리의 상황이 유독 심각했던 것도 맞으나 외부에서 묘사하는 모습 또한 매우 과장된 것이었기에, “Korea”에서 온 여행객에게 다짜고짜 윗동네를 욕해주고, 전쟁 우려에 대해 걱정해주는 많은 이들의 반응이 사실 불편했다. 그나마 2012년에 세계를 강타한 싸이 덕분에 10명 중 7명은 전쟁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해주고, 나머지 3명은 내게 말춤을 선보였다. 뭐, 전쟁 대신 싸이를 언급해주는 사람이 고맙기는 했으나 매번 반복되는 대화가 지겹기도 했다.

#3. 세계 속의 대한민국-2

  골목길을 걷다 한 꼬마 아이를 만났다. 저쪽 한 편에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던 그 아이는 나를 보더니 “Korea?” 하며 알은체를 해왔다. “China” 혹은 “Japan”도 아닌 “Korea”를 먼저 묻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반가운 마음에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자 꼬마 아이는 이내 “Taekwondo”를 외치며 발차기를 선보였다. 동네 꼬마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태권도 동작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그들이 이번에는 “Mr. Ban”을 외친다.

  잠시 잊고 있던 그 이름 세 글자. 한때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이라며 전국이 난리였지만 이내 존재감을 잃은 그 이름. 나 또한 고등학교 때 그의 저서를 잠시 들춰본 적은 있으나 곧 잊고 말았던 그 이름 세 글자를 여기서 다시 들었다.

  UN의 손길이 닿았던 것인지, 코이카 혹은 다른 구호 단체의 손길이 닿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곳에 다녀갔음은 알 수 있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이 이 작은 마을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간 덕분에, 오늘 내가 이곳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달고 일하는 그들에게 새삼 고마웠다.

#3. 당신은 경계대상 1호입니다.

  “누군가 너에게 영어를 쓰며 접근해 오거든, 조심해라.”

  모로코행 비행기 표를 발권한 내게 ㄱ 오빠가 해준 조언이다.

  프랑스령이었던 이곳은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이다. 공항에서 영어 표지판을 본 이후로 그 어느 곳에서도 영어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호객꾼은 짧은 영어를 할 줄 알았으나, 식당 주인도 숙소 주인도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나는 그들과의 손짓, 발짓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었다. 그런 내게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유창한 영어로.

  ‘오호라, 당신이 내가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군.’

  동물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듯이 나 또한 대놓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저 남자는 대체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영어를 잘 하며, 왜 내게 말을 걸어오는가. 그는 호객꾼인가, 사기꾼인가.

  잔뜩 경계심을 드러내는 내게 그는 친절했고, 끈질겼다. 그를 외면하며 길을 나섰으나 그는 자신은 호객꾼이 아니며, 그저 자신의 고향을 내게 소개해 주고 싶을 뿐이라며 계속 나를 따라왔다. 내가 동행을 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음에도 내 뒤를 졸졸 따라 걷더니 어느덧 내게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도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여행 책자조차 없이 여행하는 나는 그 덕분에 마을 곳곳을 알차게 구경했다.

  그는 호객꾼이나 사기꾼이 아니라는 자신의 약속을 증명이라도 하듯, 헤어짐을 앞두고 내게 팁을 요구하는 대신 민트 티를 사주며, Fouad라는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그의 종이를 받아들며 한국에 온다면 나 또한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내일 다시 만나자는 그의 말은 한 귀로 흘려들은 채.

화덕에서 구워낸 빵이 모로코의 주식이라고 했다.
마을 끝에 다다르자 펼쳐진 바닷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숙소에 홀로 누워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는데, 어느덧 어둠이 깔리더니 이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세상 속에 홀로 남아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하다. 불을 끄고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해본다. 고요한 밤이 깊어져 간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141일의 유럽여행을 시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유럽 141일, 여행 전 이야기

#1. 7년 전의 나는 2013년, 7년 전의 나는 휴학생이었다. 복학까지는 한 학기가 남아있었고, 배낭여행이야말로 대학생의 로망이라고 믿고 있었다. 누군가 초보 배낭여행자에게 유럽이 가장 적합하

story-storage.tistory.com

유럽여행 중 모로코로 오게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네 번째 서랍. 번외편 - 어떻게든 되겠지.

20130409의 일기 #1. 어떻게든 되겠지 – 일정 편 클릭, 클릭, 클릭, 띵동. 마침내 메일이 왔다. 지난 삼사일의 고민의 결과물인 그 메일을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다. 프랑스 - 모로코 왕복 비행기 ��

story-storage.tistory.com

Fouad처럼 이유 없이 무한 호의를 베풀어준 또 다른 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서랍1-2) UAE 아부다비 - 파키스탄에서 온 그

20130326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326의 일기(1) #4. 마리나 몰로 향하는 길 마리나 몰로 향하는 길이다. 그랜드 모스크에서 다시 30분을 걸어 나왔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길을 지나가던 ��

story-storage.tistory.com

Korean인 제게 '태권도'로 알은체를 해준 친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서랍3-1) 번외편 - How I Met Matthew?

#1. 웨일스(Wales)로 향하는 길 뱅거(Bangor)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뱅거는 웨일스의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이다. 런던에서 버스로 8시간 30분이 걸리는 그곳은 Matthew의 고향이다. Matthew는 필�

story-storage.tistory.com

링크 외에도 같은 카테고리의 글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