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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영국

서랍3-1) 번외편 - How I Met Matthew?

by 서랍 속 그녀 2020. 2. 18.

#1. 웨일스(Wales)로 향하는 길

  뱅거(Bangor)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뱅거는 웨일스의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이다. 런던에서 버스로 8시간 30분이 걸리는 그곳은 Matthew의 고향이다. Matthew는 필리핀 여행에서 만난,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이다. 나는 그의 집에 초대받아서 가는 길이다.

  내가 어떻게 친구 없는 친구 집으로 향하게 되었는지, 그와의 만남부터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2. How I met Matthew?

  2012년 연말, 나는 홀로 필리핀 마닐라 숙소에 누워있다.

  여행의 시작은 친구와 함께였다. 우리는 보라카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마닐라를 며칠 둘러본 뒤 귀국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려 크리스마스이브에 사고를 당했고, 돈을 모두 잃어버렸다. 귀국일까지는 며칠이 남았지만, 충격에 빠진 친구는 일정을 앞당겨 먼저 귀국했다. 나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예정보다 일찍 귀국할 수는 없었다. 일찍 귀국하면 부모님께 이 사고에 대해 말해야 할 거고, 다시는 해외여행을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대학생의 로망이라는 배낭여행도 아직 못 다녀봤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남은 며칠을 더 마닐라에서 버티기로 했다.

  숙소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들은 고모가 돈을 보내주었지만, 그래서 돈은 있었지만 무섭고 싫었다. 귀국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며칠간 혼자 써온 4인실 방에 새로운 투숙객이 들어왔다. 친구로 보이는 셋은 바닷가에서 바로 오는 길인지, 수건이며 수영복 등을 털고 너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조용하던 방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2층 침대에 앉아 존재감 없이 그들을 지켜보던 나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옷걸이 빌려줄까요?”

  한국에서 들고 온 세탁소 옷걸이가, 이곳에 버리고 가려던 참인 그 옷걸이가 그들에게 꼭 필요해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정말 고맙다며 옷걸이를 받아들더니 대화를 걸어왔다.

  그가 바로 Matthew이다. 그는 영국 웨일스에서 왔고, 친구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나에게 그는 대뜸 태권도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중학교 때 2년간 태권도를 배웠기에, 할 줄 안다고 했다. 발차기 시범을 보여달란다. 얼떨결에 발차기 시범을 보였다. 태권도 발차기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짐 정리를 마친 Matthew는 근처에 KFC가 있냐고 물었다. 역 근처에 있다고 답해줬다. 자기들과 함께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왜 나가고 싶지 않은지, 저녁을 먹지 않을 건지 물었다.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친구는 떠났고, 나가기 무섭다고 했다. Matthew가 괜찮다고, 같이 나가자고 했다. 자기들과 함께면 사고는 안 당한단다.

  그의 말은 사실로 들렸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사고를 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Matthew는 키 195cm의 전직 UFC 선수였고, 다른 친구들도 그와 비슷한 배경을 가졌을 거라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의 사고 경험을 들은 그들은 나를 경호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키가 190cm는 훌쩍 넘는 남자 두 명과 키가 180cm는 되어 보이는 여자 한 명에게 둘려싸여 길을 나섰다. 사고 이후 첫 외출이었다.

  필리핀 KFC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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