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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영국

서랍2-4) 영국 - 런던에서 레미제라블을

by 서랍 속 그녀 2020. 2. 15.

20130329의 일기

#1. 오빠의 입대 전 마지막 소원

  나는 삼 남매다. 두 살 많은 오빠, 일곱 살 어린 남동생. 그 사이의 나.

  내가 유럽으로 떠나오기 두 달 전, 오빠는 입대를 했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오빠는 입대를 앞두고 부산에 내려왔다. 오빠는 우리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봤는데, 너무 좋았단다. 그래서 우리 셋이 함께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입대 전 소원이라니, 이뤄주기로 했다. 처음으로 삼 남매가 나란히 영화관 의자에 앉았다.

#2. 런던에서 공연을

  우리나라의 대학로 느낌이려나. 런던의 극장가인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에서 여러 극장을 돌다 보면, 공연 표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밤에 야경 투어를 다녀와서 몸이 많이 피곤했던지라, 오늘은 극장가를 돌며 표를 구하고, 근처를 가볍게 구경하고 공연을 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아봤다.

  어떤 공연을 볼까 생각하며 거리를 돌다가 레미제라블 극장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 영화도 봤으니, 뮤지컬로 한 번 더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극장 간판의 ‘film’은 눈치채지 못했다.

#3. 영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극장 문 바로 옆에 있는 자동 매표기 앞에 한 일가족이 서 있었다. 부부와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 두 명. 내가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부부 중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떤 film을 보러 왔는지, 몇 시 film을 볼 것인지, 몇 명이서 볼 것인지 등등. 분명 가족끼리 온 관람객인 것 같은데 매표소 직원이 할 법한 질문을 던진다. 갑작스럽게 다다다다 질문 세례를 받은 나는 정신이 멍하다. 정신을 차리고 대답은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레미제라블을 보러 왔다, 시간은 상관없다, 혼자 볼 거다라고 답했다. 그 남자는 다시 아내와 빠른 속도로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 일가족이 표를 끊기를 기다리며 뒤에 줄을 섰다. 표를 끊은 부인이 뒤를 돌더니 나에게 표를 건넨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표와 부부를 번갈아 쳐다봤다. 부부는 미소를 지으며, 영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선물이니 즐겁게 즐기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하게표를 받아들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갔다. 나는 뒤늦게 그 가족을 불러 세웠다. 마침 내 가방에는 외국 친구를 사귀면 주려고 한국에서 사온 기념품이 있었다. 전통 문양이 그려진 책갈피와 한복 입은 남자아이가 그려져 있는 엽서를 아이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알고보니 'ODEN'은 우리나라의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같은 곳이었다.
영화 티켓

#4. 영어 공부를 하는 방법

  그 일가족이 떠나고 극장에 혼자 남았다. 쉴 곳을 찾아 자리를 잡은 후,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나는 뮤지컬을 보러 왔다. 근데 그 부부는 ‘film’이라는 단어를 썼다, 곳곳에서 팝콘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문화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뮤지컬 표를 자동 매표기에서 뽑는 것도 조금 어색하다.

  그렇다, 여기는 뮤지컬 극장이 아니라 영화관인 것이다. 나는 뮤지컬을 보러 들어왔으나 영화를 한 번 더 보게 된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본 영화이지만,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영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표를 선물해준 일가족의 마음이 고마워서 영화를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두 번째로 보는 레미제라블은, 영어 공부를 하는 기분이었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것, 처음에는 자막을 켜고 보고, 이후에는 자막을 끄고 보는 것. 영어 듣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 쓰는 흔한 방법이다. 내용은 이미 알고, 대사도 어느 정도 떠올랐다. 영어 듣기 평가를 하는 마음으로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주인공 장발장의 대사가 가장 알아듣기 쉬웠다.

  군대에 있는 오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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