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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영국

서랍2-6) 영국 런던 - 하루가 23시간 일 때

by 서랍 속 그녀 2020. 2. 17.

20130331의 일기

#1. 하루가 23시간 일 때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가량이 흘렀다. 처음 며칠은 알람도 없이 새벽 5~6시쯤 눈을 떴는데, 요 며칠은 그래도 8시쯤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시차 적응을 하는 중이다.

  오늘도 평소처럼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930분이다. 오늘만 특별히 늦잠을 잔 것이 아니다. 3월 마지막 주 일요일인 오늘, 서머타임이 시작되었다. 눈을 떴을 뿐인데 한 시간을 잃어버린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한껏 늑장을 부렸다. 하루가 23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내가 부지런해지지는 않는다. 그저 평소 리듬을 따를 뿐이다.

#2. 누군가 경청해 준다는 것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가량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줄곧 혼자였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고, 내 부족한 발화량은 그나마도 영어로 채워졌다. 여러모로 나의 수다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여건이다.

  브릭 레인 마켓(Brick Lane Market)으로 향하는 길이다. 내 옆에는 같은 민박집 투숙객인 한 남자가 함께 걷고 있다. 스위스 유학생인 그분은 굉장히 인자한 인상을 가진 어른이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말을 할 때, 그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이었다. 입에 곧 거미줄이 쳐질 것 같던 나는 그분의 경청에 힘입어 하루 종일 쫑알쫑알 말을 건넸다.

  나의 수다는 브릭 레인 마켓부터 타워브리지(Tower Bridge)까지 이어졌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온갖 얘기를 다 했던 것 같다. 그분은 하루 종일 조카뻘의 어린 내가 건네는 모든 얘기를 경청해 주었다. 덕분에 그날 하루 나의 수다 욕구는 온전히 충족되었다.

런던 타워 브릿지

#3. 선물

  내일은 이 숙소를 떠나는 날이다. 이것저것 짐을 챙기며 돌아다니다가 그분을 마주쳤다. 나와 헤어진 후 야경을 보고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분은 여전히 인자한 얼굴로 나의 무사 여행을 기원해주셨고, 함께한 오늘을 기념하며 타워브리지 모형을 선물해 주셨다.

  내 여행의 동반자인 고양이 인형에게 장난감이 생겼다.

#4. 마무리

  오늘 하루 열심히 걸은 탓에 구멍 나 버린 양말을 꿰매고 있다. 중학교 가정 시간 이후 바늘을 손에 쥔 건 처음이다. 쭈그리고 앉아 엉성하게 양말을 꿰매며 이미 흘러간 시간과 앞으로 흘러갈 시간을 생각해 본다. 유럽, 첫 도시에서의 여정이 끝나 간다.

  내 여행의 두 번째 서랍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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