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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모로코

서랍6-5) 모로코 카사블랑카 - 카사블랑카의 세 소녀

by 서랍 속 그녀 2020. 7. 4.

20130426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426의 일기(1)

#3. 카사블랑카(Casablanca)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으나 도시의 이름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 이름, 카사블랑카(Casablanca).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하다는 이곳은 모로코의 수도인 듯 수도가 아닌, 마치 터키의 이스탄불, 호주의 시드니 같은 곳이라고 했다.

  카사블랑카에 갈 예정이라는 내게, 혹은 카사블랑카를 다녀왔다는 내게 많은 이들이 영화 카사블랑카를 언급했다. 그들은 그 영화가 나의 카사블랑카 방문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궁금해했지만, 아쉽게도 난 그 영화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난 그저, 이곳에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다기에, 아부다비에서 셰이크 자이드 모스크를 보고 느낀 그 황홀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내 일정은 단 하나, 모스크 방문뿐이다.

#4. 하산 2세 모스크

  카사블랑카는 하얀 집’(casa‘’ + blanca‘하얀’)을 뜻한다고 했다. ‘하얀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의 모스크이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순백의 모스크를 기대하고 있었다.

  웅장하지만 부드러운, 온화한 느낌의 모스크를 기대하며 길을 걷던 나는 강인함과 굳건함을 자랑하는 건물의 등장에 당황했다. 저 건물이 모스크일 리는 없다며 부정하려 했지만, 곧 받아들여야만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스크가 있다는 것을.

  내 인생의 첫 번째 모스크인 아부다비의 셰이크 자이드 모스크는 순백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었다. 바라보면 포근했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모스크인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는 힘있게 각진 건물이 강렬했고, 위엄있었다. 바닷가에 접해 있어서 그런지 종교 건물이라기보다는 요새처럼 느껴졌고, 하필이면 흐린 날씨에 음침함이 더해졌다. 위엄을 자랑하는 건물이 멋있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기대하던 느낌은 아니었기에 다소 풀이 죽은 채 건물을 거닐었다.

하산 2세 모스크 전경. 구름 때문인가, 괜히 더 스산하다.
저 탑이 약 200m로 세계 최대 높이라고 한다. 새삼 오른편의 공사장이 작고 귀여워 보인다.

#5. 카사블랑카의 세 소녀

  다른 의미로 위압감에 눌려 멍하니 건물을 구경하는데, 한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왔다는 내게 그녀는 확장된 동공과 격앙된 목소리로 “I really love Korea!”를 외쳤다. 꽃보다 남자, 시티헌터를 보고 이민호에게 푹 빠졌다는 그녀는, 그저 내가 그녀의 우상과 국적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게 무한 호의를 베풀고자 했다. 집에 초대해주겠다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 호의 대신 연락처를 받았고, 놀랍게도 카카오톡 아이디가 있는 그녀 덕분에 내 카톡 목록에는 Zineb 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추가되었다.

  Zineb을 떠나보내고 다시 멍하니 건물을 바라보는데 또 다른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데자뷔인 듯 역시나 꽃보다 남자, 시티헌터를 보고 이민호에게 푹 빠졌다는 그녀는 기본적인 한국말도 할 줄 알았다. 새삼 한류의 영향력에 놀라며, 난 다들 이렇게 난리인 꽃보다 남자, 시티헌터도 안 보고 무얼 했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내가 그 드라마를 봤다면 그녀들의 흥분에 좀 더 신나게 장단을 맞춰줄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게도 난 그러지 못했다.

  두 한류 소녀 팬을 떠나보내고 이제 나도 슬슬 이곳을 뜨려는데, 또다시 한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다소 먼 곳에서 “Do you speak English?”를 묻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You are so beautiful!”을 외치고는 손을 흔들며 유유히 떠나갔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건 뭐지싶어 얼떨떨했다.

  모스크에서의 짧은 머무름은 이렇게 세 소녀로 가득 찼다. 어둡고 스산한 이미지만 가지고 돌아갈 뻔했던 이곳 모스크가 그녀들 덕분에 환해졌다. 별다른 감흥 없이 스쳐 지나갈 뻔했던 이곳 카사블랑카가 그녀들 덕분에 풍성해졌다.

  카사블랑카의 세 소녀, 고마웠어.

  오늘은 426, 오빠의 생일이다. 군대에 있는 그의 생일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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