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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아이슬란드-워크캠프

서랍4-6) 번외편 - 어떻게든 되겠지.

by 서랍 속 그녀 2020. 3. 6.

20130409의 일기

#1. 어떻게든 되겠지 일정 편

  클릭, 클릭, 클릭, 띵동. 마침내 메일이 왔다. 지난 삼사일의 고민의 결과물인 그 메일을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다. 프랑스 - 모로코 왕복 비행기 표. 무계획이 계획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비행기 표를 발권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모로코도 가요?”

  ㄱ 오빠와 처음 인사를 주고받던 날, 유럽 장기 여행 중이라는 나에게 그가 물은 질문이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이 있는 그 모로코?

  나의 여행 계획은 매우 단순하다. 유럽 횡단. 런던과 이스탄불, 그 사이의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렇기에, ‘모로코는 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이런 나의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계획을 들은 ㄱ 오빠는 그래도 유럽에 왔는데 어떻게 모로코를 안 가냐고 반문한다. 모로코가 언제부터 유럽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 유럽과는 다른 이색적인 풍경, 친절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칭찬이 이어진다. 말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직접 찍은 사진까지 내보이며 나의 시각을 자극한다. 전문 사진가인 그가 찍은 사진은, 나를 반하게 하기 충분하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래, 사막에서 밤하늘을 보며 밤을 지새워보는 게 꿈이었지하는 감성과 안 그래도 여행 경비가 부족한데 덜컥 비행기 표를 사기는 힘들다는 이성의 부딪힘. 나는 이성적인 척하는 감성파다. 그래서 감성과 이성이 부딪히면 감성이 이긴다. 고민의 시작부터 답은 이미 정해져 있던 셈이다.

  레이캬비크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그 날, 파리 시내로 향하지 않고 바로 다시 비행기를 타서 모로코로 향하는 일정이다. 내가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딛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만 돌면 된다며 ㄱ 오빠가 그려준 모로코 지도 한 장, 그 지도 한 장에 의지한 나의 모로코 여행이 2주 뒤에 시작된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120여 일 동안 내가 어디를 가게 될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ㄱ 오빠가 그려준 모로코 지도

#2. 어떻게든 되겠지 자금 편

  미처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침대에서 뒹굴며 클릭 몇 번만으로 끝내버린 나의 지출 내역을 잠시 소개해보려고 한다. 클릭하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였지만, 그 클릭에 다다르기까지 나를 수없이 고민하게 만든 그 주인공들이다.

  -인천에서 런던, 이스탄불에서 인천 왕복 비행기 표 약 110만 원

  - 유레일 플렉시 패스 15일 권 약 75만 원.

  -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사전 참가비 20만 원.

  정말 최소한의 교통수단을 끊었을 뿐인데, 200만 원이 훌쩍 빠져나갔다.

  남은 900만 원을 141일로 나누어 보니 하루 생활비가 대략 6.3만 원이 나왔다. 하루 6.3만 원으로 먹고, 자고, 구경하고, 유레일 패스를 쓰지 못하는 곳에서는 도시 이동도 해야 한다.

  유럽 중에서도 물가가 비싼 영국을 거쳐 아이슬란드로 왔지만, 아직 하루 예산 6.3만 원 선을 초과하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는 Matthew의 집에 머문 덕분이고, 이곳 아이슬란드에서는 워크캠프에 참가한 덕분이다. 물론, 한국에서 내고 온 사전 참가비와 현장에서 납부한 참가비, 투어 참가비를 계산해보면 하루 예산 6.3만 원 선을 겨우 맞추긴 했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위기는 워크캠프가 끝난 뒤 아이슬란드에서 보낼 일주일과 그 이후 서유럽 일정이다.

  빠듯한 경비로 인해 여차하면 서유럽 일정을 대폭 줄이고, 동유럽으로 훌쩍 넘어가야지생각하던 와중에 40만 원을 내고 모로코 왕복 비행기 표를 끊어버린 것이다. 비행기 표에 큰돈이 든 만큼 모로코에서의 하루 생활비는 3.5만 원 내외로 잡았다. 모로코 일정으로 인해, 내 여행 예산에 큰 구멍이 나진 않기를 바라며.

  한 달, 두 달 뒤의 내가 지붕이 있는 건물에서 잠은 잘 자고 있을지, 밥은 잘 먹고 다닐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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