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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아이슬란드-워크캠프

서랍4-5)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 어느 괴짜 영화감독의 집

by 서랍 속 그녀 2020. 3. 5.

20130408의 일기

#1. 어느 괴짜 영화감독의 집

  어느 괴짜 영화감독의 집에 왔다. 그에게 괴짜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모르겠다. 성격 때문인지, 그의 작품 세계 때문인지, 집의 꾸밈 때문인지. 그저 그렇게 불린다기에, 나도 그렇게 불러 본다.

  바닷가를 마주하고 있는 그의 집 마당에 전시된 녹슨 철 구조물이 눈에 띈다. 검은빛 바닷물과 녹슨 철물, 푸른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만들어내는 색의 조화가 마음에 든다. ‘역시 예술 하는 사람의 감성은 남다른가?’ 생각해보며 이곳저곳을 거닌다.

#2. 의식하지 말라 하면 더욱 의식되는 법

  어디선가 나의 모습이 포착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저 멀리서 사진을 찍고 있는 ㄱ 오빠의 구도 안에 내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괜히 민망해서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손으로 ‘V’를 그려본다. 사진을 찍고 돌아온 ㄱ 오빠가 나를 나무란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잡기 위해 일부로 말을 안 하고 찍었는데, 내가 ‘V’를 그려서 분위기가 깨졌단다.

  나는 한여름에나 어울릴 법한 주황색 긴 치마를 입고 있다. 한여름에 입으려고 들고 온 옷이 맞다. 하지만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 레깅스 위에 치마를 바람막이용으로 덧입고 있다. ㄱ 오빠는 내 주황색 치마가 이곳에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몇 번이나 더 몰래 나를 구도에 넣고자 했고, 나는 그때마다 귀신같이 내가 사진 찍히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자꾸 어색하게 웃거나 손으로 ‘V’를 그렸고, ㄱ 오빠는 이런 나를 계속 나무랐다. 제발 모른 척 좀 해달라고. 아니, 느껴지는 걸 어떡하나.

  나는 사진 모델은 되지 못하려나 보다.

분위기가 깨져버린 사진들 중 한 장
이 사진은 정말 모르고 찍힌게 맞다.

#2. 삼시 세끼

  우리가 처음 마주하던 날. 6명이 모두 모여 워크캠프의 시작을 알리던 날. 캠프 리더인 NatachaLara는 가장 먼저 식사 당번을 정해주었다. 그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정해진 대로 그날의 아침 설거지 당번이 설거지를 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아침 식사 후, 우리의 거실에는 일정표가 붙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정표에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점심, 저녁이 꼬박꼬박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일정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식사 일정을 보고도 나는 여전히 몰랐다.

  한 3일 지내보니까 알겠다. 식사 당번을 가장 먼저 정한 이유를, ‘삼시 세끼의 존재감을.

  식사 당번과는 상관없이 다들 서로서로 돕고 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모두 서툴다. 채소 몇 개 써는데 몇십 분,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데 몇십 분, 실제 조리하는 시간 몇십 분. 이런 시간이 쌓여 한 끼를 준비하고 나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은 요리가 끝났을 때 주방의 상태를 보면 안다고 했던가. 파스타나 볶음밥과 같은 한 그릇 음식을 해 먹었을 뿐인데 설거짓거리는 한 더미다. 그걸 치우는 데 또 한 시간이 흐른다.

우리의 식량 창고
삼시 세끼로 꽉 찬 일정표

  삼 남매가 옹기종기 자라던 시절, 방학이면 엄마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아이고, 어떻게 밥만 먹고 돌아서면 밥 시간이니."

  오늘 하루도 삼시 세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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