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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일상) 우문현답

by 서랍 속 그녀 2020. 6. 20.

#1. 삼남매의 서울살이

  2살 많은 오빠, 7살 어린 남동생, 그 사이의 나. 삼남매가 함께 산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서울살이의 시작은 당연히(?) 오빠였다. 대학 진학을 위해 먼저 서울로 올라온 그가 1인 가구의 외로움에 사무쳐갈 때, 내가 서울로 임용시험을 봤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서울과 학창시절을 보낸 부산, 3의 도시 등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던 내게 오빠가 적극적인 제안을 해왔다.

  아침에 된장찌개를 끓여주겠다고 했다. 아침밥을 차려준다는 그 제안에 솔깃하여 서울행을 결심했다. 그렇게 오빠의 서울살이 7년 차에 내가 합류했다.

  둘이 함께라 쓰고 오빠가 주도함이라 읽는, 둘이 함께하는 살림에 익숙해졌을 때쯤, 동생이 역시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오빠의 대학 진학으로 흩어진 우리는 동생의 대학 진학으로 다시 모였다. 무려 10여 년 만의 재결합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

#2. 와 작은

  큰아들은 작다. 작은아들은 크다.

  행여나 식탁 모서리에 머리라도 부딪칠까, 식사 때마다 왼손으로 식탁 모서리를 하나씩 감싸 쥐게 했던 보행기 타던 그 꼬마 아이가 천장 높은 줄 모르고 자라더니 어느새 가족 내 최장신이 되었다.

  그렇게 역학관계가 변하였고, 변화된 역학관계는 의사소통에 혼란을 가져왔다.

  큰놈이 작고, 작은놈이 크다. 작은놈이 크고, 큰놈이 작다.

  어떻게 불러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3. 우문현답

  집이 조용하다. 큰놈도, 작은놈도 없다. 에어컨을 찾아 거실로 기어나와 과제를 하는 중에,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선은 노트북에 고정한 채 현관문을 향해 외친다.

  큰놈이야, 작은놈이야?”

  질문을 끝맺음과 동시에 '아차'싶었다. 질문이 잘못되었다. 큰놈혹은 작은놈이라는 대답으로는 내가 원하는 바를 알 수 없다. 질문을 고쳐 하려는 찰나에 대답이 들려온다.

  늙은 놈!”

  호, 그 짧은 순간에 질문의 의도는 정확하게 이해하면서도, 질문에 숨겨진 오류 또한 간파하였다.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을 짧고 간결하게 해낸 그의 센스에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그는 나보다 한 수 위다.

  그 대답이 본인도 뿌듯했는지 내게 다가와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게 바로 우문현답이지.”

  인정한다.

#4. 사실은 이럴 때가 아닌데

  대학원의 종강이 다가오고 있다. 다가오는 종강을 기념하듯, 살인적인 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당장 다음주에는 화요일 발표 하나, 목요일 발표 하나, 금요일 오전 9시 보고서 제출 하나가 있다. 나름 차근차근 준비한다고 해왔으나, 이번 화요일에 금요일 마감 보고서의 주제를 다시 잡으라는 뼈아픈 피드백을 받고 과제에 허덕이는 중이다. 그런데도 늙은 놈에 꽂혀 이렇게 보고서가 아닌 글을 써버리고 있다. 오늘의 일탈은 내일의 밤샘으로 돌아올 것을 알지만, 잠시의 일탈로 머리를 식혀본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대학원 종강까지 약 2주간 블로그를 쉬어가려고 한다.

  작고 귀엽다’라는 수식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부모님의 큰아들이자 나의 오빠는 사실 키가 180cm이 넘는다.

  오늘은 특별했을 뿐, 평소에 오빠에게 '놈'이라는 호칭을 쓰지는 않는다. 바로 얼마 전에 부모님께 이 블로그의 존재를 알렸기에, 제 발 저려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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