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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일상) 넌 감동이었어

by 서랍 속 그녀 2020. 7. 7.

#1. 코로나와 학교생활

  주 1회 등교 중이다. 그나마도 1교시 시작 시각을 앞당기고 블록타임제(쉬는 시간 없이 연달아 두 시간을 수업하는 것)를 운영하여 5교시 수업 후 점심을 먹고 바로 하교하도록 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가방을 메고 급식실로 내려가 밥을 먹은 뒤 자율적으로 하교하도록 지도했겠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그렇지 못하다. 방역 구멍이 뚫리기 가장 쉬운 급식실에 먼지 덩어리 가방을 들고 가게 할 수 없다는 점과 하교 시 여러 반의 신발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에서 거리 두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방은 급식실 가는 길에 신발장 위에 두면 되는데, 문제는 신발장에서의 거리 두기다. 신발장 앞에서 거리 두기를 지도할 사람이 필요하다.

  사춘기 6학년의 튼튼한 장기 덕분인지, 얼른 밥 먹고 집에 가겠다는 집념 때문인지, 몇몇 아이들은 식사가 5분 컷이다. 이들을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2반 선생님밖에 없다. 평소 빠른 식사를 자랑하시는 2반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이끌고 가장 먼저 식사를 하시기로 했다. 2반 선생께서 빠른 식사 후 신발장 앞에서 하교 지도를 해주시면, 나머지 반도 차례로 급식을 먹고 2반 선생님과 바통 터치하는 식으로 하교 지도를 하기로 했다.

#2. 오늘은 우리 반도 밥 빨리 먹어요.

  2반이 가장 먼저 밥을 먹기로 했을 뿐, 우리 반이 꼴찌로 밥을 먹기로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지난 2주간 계속 꼴찌로 밥을 먹었다.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밥 먹는 순서인데, 매번 꼴찌로 밥을 먹으니 다른 반이 내심 부러웠나 보다. 5교시 활동이 조금 빨리 끝나자 오늘은 우리 반도 밥 빨리 먹어요.” 하며 보챈다.

  좋다. 오늘은 우리 반도 밥 한 번 빨리 먹어보자.

  신발장에 고이 가방을 모셔두고 급식실로 내려가 보니 우리 반이 일등이었다. 밥을 받아오는 학생들에게 자리를 안내해주고 이제 나도 밥을 받으려고 보니 어느덧 급식 줄이 끝없이 늘어나 있다. 보아하니 내가 밥을 받아오면 우리 반 몇몇 학생들은 이미 밥을 다 먹은 후일 것 같다. 우리 반이 제일 먼저 밥을 먹었기에, 2반 선생님은 아직 식사를 시작하지도 못하셨다.

  그렇다. 신발장 하교 지도를 할 사람이 없다.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하교 지도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주린 배를 붙잡고 밥 먹는 학생들을 뒤로한 채 신발장으로 향한다.

#3. 넌 감동이었어

  신발장이 놓인 1층 복도 가운데 자리를 잡고 학생들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잡고 앉은 지 3~4분 정도가 지나자 한 명, 두 명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매번 2반 선생님께서 앉아 계신 것만 보다가 내가 앉아 있는걸 보니 어색한지 ?”, !”하면서 알은체를 해온다.

  동선에 따라 거리 유지를 하며 신발을 갈아신고 가방을 챙겨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며 학생들을 배웅해 주는데, 우리 반 학생 두 명이 복도 뒤편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급식실은 맞은편 건물 지하에 있는데?

  왜 그쪽에서 내려오니?”

  “, 애들이 선생님 (교실) 올라가셨다 그래서

  아직 급식실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내가 신발장에 있는 걸 모르니, 급식실을 떠나는 것만 보고 내가 교실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무튼, 나를 찾아서 교실에 다녀오는 길이었다는 말인데... 근데 왜? 밥 먹고 집에 가면 되는데.

“선생님은 왜? 무슨 일 생겼어?”

“아, 아니요.”

“???”

“아, 인사드리려고요.”

“!!!”

 

  그렇다. 잊고 있던 우리 반의 하교 규칙. 밥 다 먹으면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내게 인사하고 하교하기. 첫날 급식 먹으러 가기 전에 집에 가기 전에 선생님께 인사하고 가주세요.’라고 하긴 했지만 지키는 학생 반, 안 지키는 학생 반이었다. 밥 먹을 때 눈동자를 사방팔방으로 돌리며, 학생들이 급식실을 떠나기 전 최대한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려고 노력은 하나, 아직 서로 친밀도가 별로 높지 않아서인지, 굳이 내게 와서 인사를 하고 가는 게 뻘쭘해서인지 많은 학생이 인사를 안 하고 가곤 했다.

  그런데 그 인사를 위해서 나를 찾아다녔단다. 급식실은 지하 1층이고 우리 교실은 4층인데. 이 더운 날씨에 마스크까지 끼고 안녕히 계세요.” 그 한 마디를 위해서 나를 찾아 교실로 돌아갔단다.

  와아..........감동이야!!!!”

  “날씨도 더운데 힘들게 교실까지 갔어!!!”

  나의 격한 반응이 머쓱한지 쓱- 인사하고 가버리는 그들. 뒤통수에 대고 소리친다.

  “고마워!!!”

  오늘의 감동은 너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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