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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그냥 쓰는 글) 속마음

by 서랍 속 그녀 2020. 5. 22.

#1. 전시행정이 여기 있네

  까톡. 친구가 보내온 사진 한 장.

  “, 학교 시설 좋네.”

  “아니, 시설을 보라는 게 아니라…”

  “???”

  “복도를 자세히 봐. 높으신 분 오신다고 교실 안의 물건 다 밖으로 뺌

  그렇다. 지난밤 친구는 오늘 높으신 분, 매우 높으신 분이 학교에 오신다고 했다. 장차관을 제외하고는 교육공무원 중에 아마도 임명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신 분을 맞이하기 위해 교실의 각종 가구와 물건을 복도에 예쁘게 정렬해 놓았다. 교실 내 학생 간 ‘1m’ 간격 유지를 위해 이만큼 노력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래 봐야 복도로 쫓아낼 수 있었던 물품은 청소도구함, 우산꽂이, 쓰레기통 정도.

  결국 다시 교실 안에 비치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을, 그분의 짧은 학교 방문을 위해 잠깐복도로 뺐다. 그래 봐야 교실 내 ‘1m’간격 유지는 딴 세상 얘기임에도 그분은 학교가 방역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시고 흐뭇하게 떠나셨겠지. 높으신 분의 마음에 들고자 헛된 수고로 애쓰긴 했을 수십명의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보낸다.

#2. 그래서 우리 학교는 99%에요, 1%에요?

  등교 수업 준비가 한창이라는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터질 때, 기사마다 전국 학교 중 99%가 방역을 완료하고 등교 준비를 마쳤다고 보도하기에 정말 너무 궁금해서 부장님께 여쭤봤다.

  “우리 학교는 99%에요, 1%에요?”

  교직원 회의 때 교장님께서 말씀하시긴 했다. 등교 전에 방역업체를 불러 학교 방역을 할 것이라고. 한국말은 끝까지 들으랬다고, 덧붙이신 말씀이 핵심이었다. 각 교실을 모두 방역하긴 힘드니 선생님들께서 각 반 방역 좀 신경 써 달라고.

  그래서 등교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장착하고 앞뒤 교실 문부터 모든 책걸상과 손이 닿을 수 있는 웬만한 곳은 싹 다 소독제를 뿌려가며 대청소를 할 예정이다. 핵심은 아직 안 했다는 것, 그리고 방역 아마추어인 각 교사가 하리라는 것.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학교는 99%인가요, 1%인가요?

#3. 그래도 방역책임관은 너무 하잖아

  방역에 대한 지침이 쏟아졌다. 일주일간 두 번이나, 각각 1시간 반씩 불려 가서 방역대책회의를 하고, 상황 발생 시 대응요령에 대한 연수를 들었다. 그래, 하루에 3번씩 학생의 체온을 기록하고, 그들의 동선도 기록하고, 그들의 하교 후 교실 주요 곳을 소독제로 닦는 것까진 그럴 수 있다. 학생의 건강이 나의 건강이고, 나의 건강이 학생의 건강이니까. 교실의 청결함이 학생의 건강이고, 곧 나의 건강이니까. 근데 그렇다고 교사에게 방역책임관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아니, 우리가 방역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교육대학교 4년에 임용시험까지 본 교사를 교육전문가로 인정하는 것에는 그렇게 인색하면서, 지침 몇 개 내려주고는 방역책임관이라니.

  학교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교사가 학생 발열 체크는 얼마나 잘했는지, 학생의 동선 기록은 꼼꼼하게 했는지, 화장실이나 급식실 이용 시 생활지도는 잘했는지, 교실 환기 및 소독은 잘했는지 하나씩 따지겠지. 조금이라도 부족한 게 보이면 엄중 문책하겠지. 위에서 지침을 내렸는데 방역책임관인 교사가 지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은 탓이라고 하겠지.

  학생 건강은 둘째 치고,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건데요, 그래도 방역책임관은 너무하지 않나요.

#4. 엄중 문책은 협박인가, 독려인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그 단어 엄중 문책. 코로나가 시작된 후 너무 자주 쓰여서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그 엄중 문책. 또 다시 들려오는 그 엄중 문책.

  등교 수업 시작 일주일 전부터 학부모님은 매일 아침 자녀의 건강상태 설문지를 작성해서 보내야 한다. IT강국답게 온라인으로.

  초등 저학년을 기준으로, 27일 등교 수업을 위해 건강상태 설문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스템이니 교사도, 학부모도 낯설다. 그러니 응답률은 낮을 수밖에. 기껏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도입했는데도 응답률이 높지 않으니 또다시 꺼내든 그 단어, 엄중 문책. 응답률이 낮으면 엄중 문책 하겠단다, 교사를.

  교원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공문의 그 단어, ‘엄중 문책이 웬 말인지 따져 물으니 학생 건강확인 시스템을 잘 사용하도록 독려하기 위해서 쓴 단어란다.

  아, 그렇구나.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근데, 시스템 사용 주체는 교사가 아닙니다만. 우리도 전화기 붙들고 제발 응답 좀 해달라고 부탁드립니다만. 물론, 알고도 우리를 엄중 문책하려는 거겠지만.

#5. 이럴 거면 뭐 한다고

  결국 온라인 수업할 거면 뭐 한다고 개학은 1, 2, 2주씩 5주나 미뤘는지. 5주를 미루는 와중에 왜 온라인 수업준비하라고 말을 안 했는지. 5주의 시간 동안 왜 학교 방역이니 급식이니 하면서 등교 수업만 준비하게 했는지.

  기사로 빵빵 터지는 온라인 수업에 에이, 설마하던 그 설마에 발등 찍혀서 동동거리며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학부모님들께 전화를 수십 통, 그것도 여러 번 돌린 건 덤. 두 시간 연달아 학부모님들께 전화 돌리고 나니 손목과 귀에 마비가 오더라.

  기껏 곳곳에 숨어있던 장비를 찾아내서, 이런 저런 실험을 거쳐 수업을 녹화하기 시작한지 오래, 어느 날 각 반으로 선물이 왔다. 짜잔, 온라인 수업용 장비입니다. 그렇지, 이제야 오겠지. 온라인 수업 시작하면서 겨우 주문 넣었으니까. 전국의 학교에서 주문이 몰렸을 테니까. 그래도 장비가 왔길래 , 온라인 수업 쭉 하려나 보다했더니 다시 며칠 뒤에 바로 등교수업 개시 기사가 우리를 반긴다.

  전국 동시 등교 수업은 무리라는 의견이 많았음에도 전국’, ‘정상 등교 수업을 그렇게 외치더니 등교를 일주일도 안 남기고 이제는 탄력적 등교를 외친다. 아니, 1~2회 탄력적으로 등교할 거였으면 진작에 등교했어도 됐다. 결국 지역별로, 학교별로 상황에 맞게 등교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게 할 거였으면 진작에 했어도 됐다. ‘nn일 등교 수업 시작이라고 전국적으로 기사를 수백 개씩 뿌릴 필요도 없었다. 각 학교에서 학부모님과 의견 모아서 등교를 하든, 원격수업을 하든, 1회 등교를 하든, 알아서 시작했으면 되니까. 괜히 수백 명의 전교생이 몰릴 걱정에 화장실은 어떻게 나눌까, 급식실은 어떡할까, 복도 이용은 어떡할까 이리저리 노선도 안 그렸어도 됐다.

  온라인 수업할 거면 뭐 한다고 개학은 그리 미루고, 결국 지역별로 학교별로 등교 상황 다르게 풀어줄 거였으면 뭐 한다고 이렇게 등교 수업은 미루었는지 의문이지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

  공무원은 (보도 대신) 공문으로 말하는 거라고 배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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