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 여행 이야기/아이슬란드-워크캠프

서랍4-2) 아이슬란드 - 레이캬비크의 첫인상

by 서랍 속 그녀 2020. 3. 1.

20130405의 일기

#1. 첫 만남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다. 지난 새벽에 합류한 터라 아직 이곳이 낯설다. 맞은편 침대에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짙은 고동빛 머리를 가진 남자가 보인다. 그가 프랑스에서 온 Lois 일 것이라고 짐작해보며,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을 나왔다.

  적막이 감싸고 있는 부엌 뒤편으로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다. 검정 머리의 아시아인. 참가자 명단에서 본, 나와 같은 한국인 참가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하고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인사다.

  서로를 반가워하며 어떻게 여기를 오게 됐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사이, 지난 새벽 나를 맞아주었던 Natacha가 부엌으로 나왔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누고, 함께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그사이 한 명, 두 명 부엌으로 나왔고, 마침내 공동생활을 할 6명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캠프의 리더인 NatachaLara, 캠프 참가자인 나와 ㄱ 오빠, Lois 그리고 Richard.

#2. 레이캬비크의 첫인상

  아침을 먹고, 앞으로의 일정을 안내받았다. 오늘은 특별한 일정이 없다는 것이 일정이었다. 자유롭게 주변 구경을 하며, 다양한 사진을 찍어 보라기에 ㄱ 오빠, Lois와 함께 시내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곧게 뻗은 대로 하나. 조용하고 한적한 이 대로가 레이캬비크의 가장 큰 번화가란다. 길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Natacha가 눈을 찡긋해 보인다. 길 잃는 게 일상인 나에게도, Natacha의 말은 수긍이 갔다. NatachaLara그냥걷다 보면 나오는 큰 교회가 이곳의 가장 큰 관광지이니 둘러보면 좋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사무실로 향했다. 우리도 딱히 그 교회가 어디쯤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이상의 정보는 필요해 보이지 않았기에.

  듬성듬성 들어선 건물과 한적한 도로 덕분에 시골 마을을 구경하는 듯한 평화로움을 느꼈지만, 사실 이 레이캬비크에 아이슬란드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고 있다는 것은 이후에 알았다.

#3. 어느 할머니

  멀리서 보면 모른다. 그저 집이 한 채, 두 채 늘어서 있을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야 보인다. 각 주인의 개성이. 창가에 얹어 놓은 화분 하나, 마당에 심어 놓은 작은 소나무 한 그루, 작은 소나무 옆의 작은 움막집 하나. 아기자기한 소품이 곳곳에 보였다. 길 가는 사람들이 옅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딱 그 정도의 꾸밈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다가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환경을 주제로 꾸며놓은, 가정집이자 전시관으로 보였다. 자유롭게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되어 있기에 종을 울려 보았다.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거실에는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여러 가지 소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비닐이나 가죽이 아닌 천으로 만든 가방, 뜨개질로 만든 인형 옷 등. 전시도 감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할머니의 존재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문을 열어주신 그 순간부터 범상치 않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녀는 과연 그랬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우리에게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그녀는, 어느새 아이슬란드의 경제 위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이끌었고, 우리는 본인이 40년만 젊었어도 Lois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을 거라는 그녀의 거침없는 입담에 사로잡혀 한참을 그 집에 머물렀다.

#4. 나이 듦에 대한 생각

  저녁을 먹고 하나 둘 거실로 모였다. 소파 한 편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방법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Lois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ㄱ 오빠는 오늘 찍은 사진을 살피며 보정하고 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왔지만 여전히 업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Richard는 업무를 살피고 있다. 나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느 때처럼 일기를 적으며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하루를 되짚어보니 다시금 그녀가 떠올랐다. 일기를 적으며 생각했다.

  그녀처럼 나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

  나보다 40살은 어린 젊은이들과 유창한 외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

레이캬비크 시내를 걷다보면,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는 그 교회

[함께 읽으면 좋은 글]

141일의 여행을 시작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유럽 141일, 여행 전 이야기

#1. 7년 전의 나는 2013년, 7년 전의 나는 휴학생이었다. 복학까지는 한 학기가 남아있었고, 배낭여행이야말로 대학생의 로망이라고 믿고 있었다. 누군가 초보 배낭여행자에게 유럽이 가장 적합하

story-storage.tistory.com

국제워크캠프에 대한 짧은 소개가 담겨 있습니다.

 

서랍4-1) 아이슬란드 - 국제워크캠프에 참가하다

#1. 국제워크캠프란? 2012년 설, 바닥이 뜨끈한 사랑방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누군가의 휴학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데, 왜 그 책을 빌렸는�

story-storage.tistory.com

이 외에도 같은 카테고리의 글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