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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프랑스

서랍7-1) 프랑스 파리 - 지갑이 사라졌다.

by 서랍 속 그녀 2020. 12. 27.

20130505의 일기

#1. 지갑이 사라졌다.

  자정이 넘은 시각, 파리 시내의 한 지하철역이다. 12시간 넘게 이동을 한 지금, 피곤함보다 긴장감이 앞선다. 깜깜한 새벽에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메고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빨리 숙소에 도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찰구를 지나기 위해 지갑을 찾는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던 그 지갑이 손에 닿지 않는다.

  어?

  보조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옷 주머니를 살핀다. 앞으로 멘 가방을 살핀다. 다시 거꾸로 앞으로 멘 가방을 살핀다. 옷 주머니를 살핀다. 보조 가방을 뒤진다.

  사라졌다, 내 지갑이.

  지금, 이 순간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 지갑 안에 지하철 표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더 당혹스럽다. 무임승차로 오해받아 벌금을 물게 될까 걱정이다. 저 멀리 보이는 역무원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우물쭈물 말을 건넨다.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지갑을 잃어버린 일이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와 달리 역무원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개찰구를 지날 수 있게 안내해준다.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2. 따뜻한 밥 한 그릇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상 앞에 앉아있다. 짐을 풀고 곧장 자려는 내게 민박집 사장님께서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차려주신 상이다.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지갑을 잃어버린 충격이 따뜻한 밥상을 만나 폭발해버렸다. 지갑에 큰돈이 들어있던 것은 아니다. 항상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당부에 동전 지갑 안에는 기껏해야 10유로 안팎의 돈이 들어있었을 뿐이다. 나머지 돈은 보조 가방의 안쪽에, 앞으로 멘 가방의 안쪽에, 큰 배낭의 안쪽에 크고 작게 나눠 둔 상태였다. 그래서 돈을 잃어버린 건 괜찮았다. 하지만 잃어버린 동전 지갑은 모로코 여행을 기념하는 유일한 기념품이었다. 무사히 모로코 여행을 마친 것을 기념하여 마지막 도시에서야 겨우 하나 고른 그 기념품을 모로코를 떠나자마자 잃어버렸다. 늘 손안에 품고 다니려던 모로코의 추억이 그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3. 일곱 번째 서랍의 문을 열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역무원이나 민박집 사장님이나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소매치기를 조심해라.’

  소매치기로 악명높은 도시니 그럴 만도 하다. 근데 아무래도 나의 실수인 것 같은데 다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하니, 악명높은 그 소매치기범들에게 미안한 마음 까지 든다.

  아마도 공항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였을 것 같다. 의자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오랜만에 만져보는 지하철 표를 사진으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카메라를 꺼내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잠시 내려 두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던지라 방심하고 지갑을 그냥 옆에 내려 두었고, 사진을 찍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 버렸다. 워낙 늦은 시각이었던 지라 그 누구도 내 근처를 지나가지 않았기에 더욱 나의 실수라는 확신이 든다.

  여행 40여 일 차, 무난하게 모로코 여행까지 마치고 자신 있게 유럽으로 돌아왔다. 앞으로의 여행도 사건 사고 없이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필이면 어린이날인 오늘, 그 자신감이 자만이 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방심하면 사고가 난다는 마음 아픈 경고장과 함께 일곱 번째 서랍의 문을 연다.

지갑과 맞바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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