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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

일상) 카톡, 그 이전의 매체에 대하여

by 서랍 속 그녀 2024. 4. 25.

※ 본 글은 대학원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매체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3월 첫 주, 길게 늘어진 동아리 홍보 천막과 바글바글한 인파가 새로운 학년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지난한 입시를 끝내고 설렘과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표는 ‘24학번’. 이들을 바라보자니 문득 나의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고리타분하게 라테는 말이야~’를 하고 싶지는 않으나 나의 신입생 시절은 지금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대학에 입학한 2011년이 바로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바야흐로 카카오톡(이하 카톡) 전성시대가 막 시작된 해였기 때문이다.

  피처폰과 스마트폰 사이에서 그 무게 중심이 하루하루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에,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의 대학 생활을 짧게 맛본 사람으로서, 카톡이 없던 시절의 대학 생활이 지금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회고해보고자 한다.

  먼저 입학 전을 회고해 보자. 지금은 새로운 모임이 생기면 으레 단체카톡방(이하 단톡방)부터 개설한(). 라테는 단톡방 대신, 지금은 서비스 지원이 중단된, 네이트 싸이 클럽이 있었다. 싸이월드는 개인 홈페이지였다면 싸이 클럽은 지금의 네이버·다음의 카페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당연하게단톡방이 개설되는 요즘처럼 그 당시에는 으레합격 대학의 싸이 클럽이 있을 것이라는 게 보편적 인식이었기에, 특별히 전달받은 공지 없이 알음알음 싸이 클럽을 찾아 가입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싸이 클럽을 통해 동기와 선배들의 이름을 익히고, 새터 공지를 확인하고, 남들이 단 댓글을 구경하곤 했는데, 사실 싸이 클럽은 수면 위로 드러난 오리와 같았을 뿐, 수면 아래에서 미니홈피, 네이트온 채팅을 통한 개별 소통이 분주히 일어나고 있었다. , 싸이 클럽은 공적인 느낌(공지 및 각종 소식을 위한 공간)과 사적인 느낌(유희·소통을 위한 공간)을 모두 띠고 있었기에, 유희·소통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구성원 전체에게 공개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친목을 위한 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지는 않은 것이다. 싸이 클럽에서의 친목을 위한 소통은 활발하게 일어나는 듯하다가도 그 친목을 이어나가기 위해 소통 공간을 미니홈피나 네이트온으로 옮겨가고는 했으며, ‘진정한친목은 미니홈피와 네이트온을 통해 이루어졌다.

  입학 후에는 어땠을까? 단톡방은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가상의 공간에 모일 수 있도록 한다. 이 단톡방은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실시간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바꿔 말하면 단톡방 이전의 시대는 이러한 소통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싸이 클럽이 있긴 했지만, 공지를 올리고 모두가 그 공지를 확인하기까지의 소요 시간이 길었던 탓에 입학 후의 싸이 클럽은 친목용일 뿐, 공지 전달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우리는 마치 고등학교 종례처럼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에 남아 공지를 전해 들었고, 과잠의 디자인을 정하는 것과 같은 의사결정도 현장에서 거수로 결정하고는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주 소통 방법이 대면이었던 것은 학교에서 정해준 시간표에 따라 과 동기들이 모두 같은 수업을 듣는 교대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갑작스러운 휴강과 같은 바로전달되어야 하는 공지는 문자를 통했다. ‘와이파이만 있으면 무료인 카톡과 달리 문자는 발송 건수·문자의 길이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었기에, 과대에게는 핸드폰 요금을 지원해주었던 기억 또한 남아있다.

  대학 생활의 꽃인 조 과제는 어땠을까? 지금은 조가 정해지면 당연히 카톡방부터 만들겠지만, 당시의 우리는 메일 주소를 주고받고, ‘00시에 네이트온에서 만나자라고 약속했다. 컴퓨터 기반 환경이었기에, ‘00는 주로 일과를 끝내고 귀가한 후가 되었다. 네이트온에 접속하면 내 프로필에 접속중이 표시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조원과 과제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다른 한 편으로는 접속 중인 다른 친구와 채팅을 하곤 했다.

  이상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대학 생활 모습이다. 당시에 우리에게는 싸이 클럽이,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네이트온이, ‘대면 종례, 문자가, 메일이 있었다.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이 ()전체인지, 내가 친한 친구들인지, 개인인지에 따라 싸이 클럽과 미니홈피, 네이트온·문자를 옮겨 다녔고, 자료를 보내기 위해서 메일도 사용했으며, 빠른 정보 전달 및 의사결정을 위해 대면 모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바꾸며 카톡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카톡은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목적의 구애를 받지 않고 모든 소통 수단을 흡수해버렸다.

  나의 기억에 의존해보자면, 당시 카톡은 싸이 클럽, 미니홈피, 네이트온, 메일 등과는 달리 모바일 기반이라는 점과 문자와는 달리 무료라는 점이 돌풍 요인이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우리는 손안의 모바일이 얼마나 편리한지 깨달아버렸고, 점차 컴퓨터 앞에 잘 앉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레 컴퓨터 기반이던 싸이 클럽, 미니홈피, 네이트온에 접속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싸이 클럽, 미니홈피, 네이트온을 통해 하던 각종 소통의 양상을 카톡은 개인 프로필, 단톡, 개인 톡 등을 통해 모두 흡수했다. 카톡 등장 초기에 우리는 카톡을 단순히 무료·무제한 문자라고 인식했던 듯 하나, 모바일 기반이라는 점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매체들로부터는 멀어지고, 카톡으로는 더 가까워진 것이다.

  카톡은 위에 언급한 각종 매체를 대체한 것을 넘어서 이전의 소통 양상과는 다른 카톡이 등장함으로 생긴 새로운 소통 양상을 만들어냈다. 카톡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두 가지 특징으로 나는 카톡이 모바일 다자대화를 최초로 가능하게 했다는 점과 무제한 메시지 발송 가능·이모티콘 사용등의 특징이 결합해 문어보다는 구어에 가까운 대화 형식을 보였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러한 두 특징이 결합한 결과로 카톡은 한 집단 내에서 하위 집단(소모임)이 파생되고 공고화되는데 일조하였다라는 주장을 펼쳐보고자 한다.

  다소 생뚱맞은 주장일 수 있다. 카톡의 등장과 한 집단 내 소모임의 파생·공고화가 대체 무슨 상관이라는 걸까? 단톡방의 등장이 소모임 문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나와 우리 동기들이 겪은 사례로 살펴보자면 이렇다. 시작은 11학번 동기 단톡방 하나였다. 수십 명이 모인 단톡방에는 수백 개의 카톡이 순식간에 쌓였고, 몇몇은 이러한 카톡 홍수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수백 개의 카톡 때문에 중요하게 전달되어야 할 공지 사항이 묻히는 것도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떠들 사람은 너네끼리 나가서 떠들어라.’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금은 익숙한 단톡방의 기능 분화가 시작된 것이다. 점차 전체가 모인 단톡방에는 공지 사항 외의 대화가 오가지 않게 되었고, 각자는 여러 개의 친목방에서 24시간이 모자라게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친목방에서 나누는 대화가 많아질수록 친목방 사람들끼리의 우정은 공고해지고, 친목방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단절은 심화되었는데, 카톡 덕분에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우리는 카톡 때문에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소통의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있었을 때는 친한 사람과의 소통 양에도 제약이 있었다. 대화가 필요할 때 문자나 통화를 하지만 그러한 소통이 종일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소통은 하루 중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손에 스마트폰을 쥐게 된 이후로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게 되었으며, ‘무료·무제한 수·발신의 위력으로 카톡은 쉼 없이 이어졌다.

  ‘쉼 없이 이어지는 대화로 인한 단결과 소외로 인해 우리는 점차 같은 소재로소통하는 일이 줄어들었으며, 단톡방의 편리함 덕분에 (공지 전달의 역할을 하던) 대면 모임도 필요가 없어졌다. 11학번의 와해는 입학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수도 있으나, 그 와해를 유발한 것까지는 아니어도 촉진시킨 것은 카톡이 아니었을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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