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
어쩔 수 없이 여러 일정이 겹치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정수기 기사님 방문과 대학원 세미나가 겹쳐서 대학원에 가기 전에 집을 들러야 하는, 동선이 꼬이는 날이 되어버렸다. 직장에서 조퇴를 하고 집에 왔다가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아 괜한 심술을 부리며 대학원으로 향했다.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하며 세미나를 마치고, 할까말까 백만번을 고민한 주유까지 하고 집으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길도 멀게 느껴져서 터덜터덜 발걸음을 겨우 내딛고 현관문을 열었다. 고단하고 긴 하루의 마무리였다.
#2. 이벤트
고단하고 긴 하루의 마무리라고 생각했다. 여느 때 같으면 현관문 여는 소리에 바로 마중을 나와줄텐데, 오늘은 마중 나오는 속도가 좀 느리다고 생각했다. 신발끈을 풀고 중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한 발짝 늦게 마중 나온 남편이 식탁을 향해 팔을 벌려 보인다.
본인이 제일 자신있는 음식이라고 자랑하던 카레와, 두쫀쿠와 봄동비빔밥을 지나 새로운 유행이라는 버터떡. 그리고 편지 한 장.
화이트데이를 그냥 넘어간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며 뿌듯함과 수줍음이 공존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저녁을 먹었지만,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카레 한 그릇을 야무지게 먹고, 버터떡을 나 한 입, 너 한 입 나눠먹었다. 서로의 일상이 바빠 미처 나누지 못했던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다이어트는 잠시 넣어두고 행복을 가득 먹었다. 운동도 안 하고 바로 집으로 왔다더니, 버터떡을 사들고 집에 와서 혼자 부엌에서 카레를 만들고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귀엽고 웃겼다.
결혼 준비는 커녕 새학기를 맞아 직장에 치이고, 대학원에 치이며, 틈틈이 신혼집까지 손보는 일상이 버겁다고 느껴졌던 오늘을, 두둑하다못해 두툼한 배와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 맛에 결혼하는 거구나. 이런 게 신혼이구나.

#3. 마무리
오랫동안 블로그를 방치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항상 블로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연재하던 글을 마무리하지는 못하더라도 소소하게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해왔고,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기점으로 다시 글을 쓰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 어느덧 살림을 합치고 신혼생활을 시작한지도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오늘,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오늘의 기억이 아쉬워 오랜만에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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