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긴 회의가 열리는 요즘입니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는 맞대지만 뾰족한 수는 찾지 못하는 회의의 반복입니다. 수요일 오전 10시, 여느 때처럼 한 선생님의 교실로 모입니다.
회의가 필요한 사안 한 무더기를 들고 오신 학년 부장님께서 종이 뭉치를 ‘탁’ 내려놓으시며 비장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장 중요한 것부터 정하고 시작할까요?”
옆 반 선생님께서 거드십니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저는 ‘아, 학사일정 안이 다시 나왔나?’ 기대하며 눈을 반짝거립니다. 너무 궁금했거든요, 방학을 언제 하는지.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변이 저를 둘러쌉니다.
“돈까스 어때요?”
“오늘 요 앞 장터 열리는 날인데, 분식?”
“오랜만에 짜장면도 괜찮지요.”
아, 저는 아직 사회생활 내공이 부족한가 봅니다. 역시, 점심 메뉴 정하기만큼 중요한 것은 없죠. 세 개의 메뉴를 두고 고민하시는 선생님들께 묘안을 드립니다.
“오늘 분식 먹고 내일 돈까스, 모레 짜장면 먹어요.”
저의 한 마디에 선생님들이 감탄하십니다. 이게 뭐라고, 뿌듯합니다. 아, 점심은 결국 분식 대신 돈까스를 먹었어요. 점심을 사러 나가신 선생님께 들어보니 장터로 연결되는 후문이 닫혀 있었다고 하더군요.
급식 인생을 살다가 매일같이 점심 메뉴를 정하려니 낯섭니다. 처음 며칠 개학이 연기되었을 때는 학교에서 먹는 외부 음식이 좋았는데, 이제는 메뉴 고민 안 해도 되는 급식이 너무 그립습니다. 제가 살면서 ‘아, 급식 먹고 싶다.’를 입 밖에 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드라마로 회사 생활을 배웠는데요. 점심시간을 앞두고 사내 메신저 등으로 점심 메뉴를 정하는 장면을 종종 봤습니다. 점심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팀원과 함께 먹는 것 같았고요. 저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학생들과 급식표를 확인합니다. 식단에 따라 함께 희비를 나누죠. 이렇듯 '학교'에서 일하다보니 회사와는 조금 다른 근무 환경이 연출되고는 합니다. 그래서 한 번 적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점심 메뉴 정하기가 너무 낯선 직장인의 직장 '생활' 이야기를. 회사 생활과는 조금 다른 학교 생활에 대하여.
모두에게 익숙한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별 것 있는 듯 별 것 없는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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