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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아이슬란드-워크캠프

서랍4-11)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마침내 사진전을 열다

by 서랍 속 그녀 2020. 3. 13.

20130413의 일기

#1. 사라진 목소리

  또다시 목소리를 잃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것을 알지만 아침마다 힘겹다. 억지로 물을 마신다. 꿀꺽꿀꺽.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이 고통으로 다가온다.

  피곤하다. 지난밤에 Lois 때문에, 이후에 Natacha 때문에, 또 내 꿈 때문에 계속 중간에 깼다. 몸이 무겁고 몽롱하다. 더 쉬고 싶지만, 오늘은 그동안 찍은 사진을 드디어 전시하러 가는 날이다. 일어나야 한다.

#2. 전시회

  사진 전시 장소는 Lara가 섭외해 주었다. 시내에 있는 한 빵집이다. 빵집에 사진을 전시하게 되다니, 재밌다. 각자 뽑은 5장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빵집으로 향한다.

  밝은 조명과 새하얀 벽면이 마음에 든다. 사장님께서 자유롭게 사진을 걸 수 있도록 해주셔서, 나를 둘러싼 벽면을 둘러보며 고민 중이다. 어디에 걸면 좋을까, 어떤 구도로 걸면 좋을까, 어떤 순서로 걸면 좋을까.

  ㄱ 오빠의 조언을 받아, Lois의 거침없는 전시에 영감을 받아, < 모양으로 사진을 건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누군가 한 명쯤은 시선을 건네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본다.

빵집 사장님의 뒷모습과 내가 전시한 사진

#3. 야외이발소

  Lois는 그동안 길어버린 머리가 성가시다. Alberto는 친구 머리를 잘라 준 경험이 있다. 길어버린 머리가 성가신 사람과 머리를 잘라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 둘의 대화는 곧 끝났다.

  이발소는 순식간에 차려졌다. 야외에 의자 하나와 샤워용 수건. .

  가위를 들고 경건하게 첫 손님을 맞이한 이발사는 거침없이 머리를 잘라 나간다.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후드득 떨어진다. 순식간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Lois는 한결 가벼워진 머리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머리를 이리저리 쓸어 본다. 첫 번째 손님의 성공적인 변화에 믿음을 얻은 두 번째 손님이 자리에 앉는다. Lois의 머리카락 위에 ㄱ 오빠의 머리카락이 쌓여간다. 추운 날씨에 덜덜 떨어가며 머리를 자르는 그들의 모습을, 나 역시 추운 날씨에 덜덜 떨어가며 사진기에 담아본다.

  유난히 익살스러운 모습이 많이 담긴 그들의 이발 모습을 공개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4. 매운맛 좀 볼래?

  저녁을 먹고 다 함께 카페에 갔다가 ㄱ 오빠, Lois와 먼저 돌아왔다. 새로운 숙소로 옮겨온 뒤, 워크캠프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생활해서 숙소가 계속 북적북적했다. 오랜만에 조용한 숙소에 들어오니 좋다.

  저녁을 먹었지만, 배가 슬슬 고프다. ㄱ 오빠와 눈빛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며칠 전부터 , 라면 먹고 싶다.’를 입에 달고 지냈다. 지금이 라면을 끓여 먹을 기회다. 라면은 ㄱ 오빠가 기부해주었다. 프랑스에서 구해온 귀한 라면을 먹게 되다니 감동이다.

  “매워”, “근데 그렇게 맵지는 않아”, “그리고 맛있어.” 먹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릴 말로 Lois를 꼬셔본다. 냄비에서 올라오는 강한 냄새를 맡으며 고민하던 Lois가 자기도 먹겠다고 나선다.

  바로 이 느낌이다. 속이 풀리는 느낌. 술은 안 마셨지만, 왠지 해장이 되는 듯한 그 느낌. 오랜만에 먹는 라면은 정말 맛있다. 같이 한입을 먹은 Lois는 코를 훌쩍이며 매운맛을 다신다. 국물 없이 면만 먼저 살짝 맛봤는데도 많이 매운가 보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애타게 찾더니 우유가 안 보이자 내 맥주를 들이붓는다.

  그만 먹으라고 그릇을 치워주려는데 자기는 끝까지 먹을 거란다. 예전에 부모님이랑 함께 인도 음식점에 가서 이것보다 매운 음식을 먹었다는 얘기로 자기암시를 하며, 다 불어버린 라면을 끝까지 먹는다.

  나는 소파에 앉아 일기를 적고 있다. 마침내 라면을 다 먹은 Lois가 어디에서 찾은 건지 조그마한 빨간 고추 하나를 들이민다. 이 고추를 먹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며 거래를 제안한다. 나는 일기에 집중한다.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자기가 제안을 해온다. 한입 만 먹으면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준단다. 거부한다. 이번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으로 고추를 잡고 “Please.”를 연발한다.

  이건 거부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고추를 받아들고 한 입을 베어 문다.

 

  쓰읍, 맵다. 맥주로 입을 헹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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