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6의 일기
#1. 이별에 익숙해지기
10일간의 워크캠프가 끝났다. 우리는 이별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다 같이 시장 구경을 했고, 블루라군(Blue lagoon, 아이슬란드의 유명 온천)에 다녀왔고, 거실에 둘러앉아 영화를 봤고, 뜨개질도 했다.
온전히 함께 보낸 하루를 뒤로하고,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서로를 끌어안고 인사를 한다. 만나서 반가웠고,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도 연락하며 지내자는 그런 인사. 너의 나라에 꼭 놀러 가겠다는 말까지 덧붙여지면 인사가 끝난다.
지금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훗날을 기약하며 인사를 건넨다.
“See you someday, somewhere.”
여행은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의 연속은 곧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한 번 가볍게 말을 주고받은 사이부터 며칠을 함께 보낸 사이까지 다양한 사람과 이별을 해왔다. 반복되는 이별이 힘들다. 크고 작은 이별에 익숙해져야 할 때이다. 하지만 이별에 익숙해져서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될까 또 걱정이다.
#2. 문제 해결 방법 찾기
아직은 여행 중 이별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기분이 살짝 처진다. 레이캬비크 시내의 한 호스텔에 방을 잡고, 홀로 앉아있다. 워크캠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은 이 방이 낯설다. 하지만 사실, 나는 지금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나는 아이슬란드에서 일주일의 시간이 남아있고, 지금 크나큰 벽에 막혀있다.
워크캠프를 하며 레이캬비크와 그 근처의 여행지를 둘러봤다. 이제는 멀리 나가볼 때이다. 주로 레이캬비크 남쪽을 여행했으니 이젠 북쪽으로 올라가 보고 싶다. 가능한 선택지를 떠올려 보았다.
- 여행사 투어 참가 : 당일로 참가할 수 있는 웬만한 여행지는 다 다녀왔다. 최소 1박 2일, 혹은 그 이상의 투어에 참여해야 한다. 비싸다, 매우. 어떻게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 버스 타고 북쪽 도시로 이동하기 : 여행사 투어보다 싸다. 이동만 하니까. 대신 의미가 없다. 아이슬란드는 도시 여행을 하는 나라가 아니다. 이동만 하고, 곳곳의 자연을 구경하지 못한다면 북쪽으로 갈 이유가 없다.
- 렌터카로 여행하기 :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운전면허가 있고, 동행자가 있다면. 하지만 나는 운전면허도 없고, 동행자도 없다.
선택지가 있어도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 KEX로 왔다.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호스텔이다. 아이슬란드의 배낭여행자는 모두 한 번은 이곳을 거친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
호스텔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메모판에 쪽지를 붙였다. 대략적인 신상(이름과 국적, 나이, 연락처), 대략적인 일정(최대 일주일, 북쪽 여행을 희망함)과 함께, 미안하지만 운전은 하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는 운전면허가 있는, 동행을 구하는 사람의 선택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동행을 구하는 문의를 많이 해온다는 호스텔 직원의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3. 끝 그리고 시작
나의 쪽지를 보고 한 한국인 여행자가 카톡을 보내왔다. 쪽지를 봤다며, 자기는 오늘 출국하지만 즐겁고 안전한 여행을 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짧은 카톡 하나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곳 KEX는 꼭 레이캬비크의 사랑방 같다. 약속하고 나온 게 아닌데 익숙한 얼굴이 자꾸 보인다. 유난히 따듯한 날, 오랜만에 두꺼운 패딩을 벗어 던지고 햇살 아래 모여 워크캠프 뒤풀이를 한다.
워크캠프 이야기와 함께 한 네 번째 서랍이 이렇게 가득 찼다. 워크캠프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나는 내가 기다리던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당장 내일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은 갑작스럽지만 풀었던 짐을 다시 싸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호주에서 온 Jono를 중심으로 다섯 명이 모였다.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북쪽으로 출발한다. 갑자기 열려 벌인 다섯 번째 서랍, 그들과 함께 한 로드트립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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