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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영국

서랍3-5) 영국 웨일스 - 카나번 성(Caernafon castle) 탐방기

by 서랍 속 그녀 2020. 2. 23.

 20130403의 일기

#1. 두 개의 다른 성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성에 왔다. Matt가 웨일스는 성이 유명하다고 하여, 그의 말을 착실히 따르고 있는 중이다. 버스를 타고 뱅거보다 살짝 남쪽에 있는 카나번(Caernarfon)에 왔다. 어제 다녀온 펜린 성(Penrhyn castle)과 달리, 카나번 성(Caernarfon Castle)은 활기찬 분위기였다. 펜린 성(Penrhyn castle)이 고요하게 자기만의 세상을 품고 있는 느낌이라면, 카나번 성(Caernarfon Castle)은 역동적으로 이 세상과 함께 공존하는 느낌이었달까.

  성 바로 앞에는 해협이 흐르고 있었고, 그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해협에 떠있는 수많은 보트. 이 성이 가진 역동적인 분위기의 많은 부분은 바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2. 큰오빠 Matt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내 앞으로 차가 한 대 멈추어 선다. 중년의 백인 남성이 창문을 내리고 나를 부른다. 어디로 가냐며, 태워다 주겠단다. 아부다비에서 만난 파키스탄에서 온 그가 생각났다.

  여행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나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그들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고, 나의 여행을 응원해 주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져 있었다. 쉽게 그 차에 타버렸다. 그리고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아주머니와 얘기하던 중, 낯선 이의 차를 타고 돌아온 얘기를 했다. 아주머니께서는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로 큰일 날 뻔했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낯선 이의 차는 절대 타지 않을 것이니, 여행의 일탈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는 와중에 Matt에게 메시지가 왔다. 아주머니께 나의 얘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유럽은 위험한 곳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나의 철없는 행동을 나무랐다. 마치 큰오빠에게 혼나는 어린 여동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날 이후 다시는 낯선 이의 차를 얻어타지 않았다. , 아이슬란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긴 했지만, 혼자 하진 않았다!

#3. 그녀의 이름은 Pupi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강아지를 안 좋아한다. 사실 무서워하는 편이다. 어릴 적 강아지에 손을 물린 기억 때문에 강아지를 의연하게 대하지 못한다. 화들짝 놀라는 나 때문에 강아지도 유독 나를 쫓아오거나 나를 보고 짖어서 더욱 무서워하게 되었다.

  Matt의 집에 처음 오던 날, 나를 맞아준 것은 Daniel뿐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나의 허리춤까지는 올 것 같은 큰 개 한 마리도 함께 나를 맞아주었다. 개를 키운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Pupi는 나에게 과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무관심은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천천히 가까워졌고, 이제는 살짝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약간' 친해짐에 힘입어 아주머니와 함께 Pupi 산책을 시키러 갔고,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목줄을 잡아보았다. 그녀와 내가 이제 그 정도 사이는 된 줄 알았지만,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나는 그녀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녔고 목줄은 곧 다시 아주머니께로 넘어갔다.

  평화로운 산책이었다. 이리저리 걷다 보니 아주머니께서 오래전 Matt 아버지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교회도 나왔다. 그 교회 앞에서 아주머니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서.

#4. 마지막 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오늘은 벌써 마지막 밤이 되었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의 머무름을 받아주고, 나의 여행을 풍성하게 해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맛있는 요리를 대접받아서 고마웠기에, 맛있는 요리로 대접하고 싶었다.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위해 챙겨온 불고기 소스를 이곳에서 뜯기로 했다.

  하지만 맛이 보장된 소스의 힘을 빌리고도, 나의 요리는 실패했다. 한국에서도 서툰 요리 솜씨가 영국에서라고 특별히 발휘되지는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에 온다면, 맛있는 불고기를 대접해주겠다고, 사실을 훨씬 맛있는 음식이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주머니와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아주머니께서 오늘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시며, 여행 소식을 종종 전해달라고 하셨다. 우리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기로 약속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들어온 방에는 아주머니의 깜짝 선물이 있었다. 웨일스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작은 인형과 초콜릿, 그리고 카드.

  나의 세 번째 서랍은 이렇게 아주머니의 온정으로 따스하게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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