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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아이슬란드-로드트립

서랍5-2) 아이슬란드 -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by 서랍 속 그녀 2020. 3. 23.

20130417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417의 일기(1)

#3. 아이슬란드 로드트립

  여행할 때 많은 고민이 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경로 선택이다. A, B, C를 가기 위해, 어떤 경로를 선택할지가 항상 고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슬란드 로드트립의 단순하다. 레이캬비크를 기점으로 남쪽으로 가냐, 북쪽으로 가냐의 선택지만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도로는 단 하나 뿐이기에. 아이슬란드를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게 놓인 그 도로를 1번 국도라고 부른다. 별칭은 ‘Ring road’.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국도 크기가 제일 비슷한 나라라고 하니, 1번 국도는 우리나라 크기의 반지인 셈이다.

  우리는 아이슬란드 제3의 도시이자, 북부 최대 도시인 아퀴레이리(Akureyri)까지 약 3박 4일에 걸쳐 이동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받은 아이슬란드 지도 한 장을 들고 떠났다. 1번 국도를 따라 달리며 간간이 지도에 표시된 폭포를 구경하고, 온천을 하는 것. 이것이 아이슬란드 로드트립의 방법이다.

#4. 설거지 논쟁

  저녁은 캐나다에서 보조 요리사로 일했다는 Jono가 실력 발휘를 해주었다. 뚝딱뚝딱 요리를 주도하는 그 덕분에 5인분의 요리가 빠르게 완성되었다. 이제는 설거지 시간이다. 내가 싱크대 앞에 서서 그릇을 집어 든다. 한꺼번에 헹구기 위해 하나씩 세제를 묻히고 있는데, Jono가 자연스럽게 세제가 묻은 그릇을 집더니 행주로 닦아내고는 거치대에 놓는다. 식당에서 일했다던 Jono에게도 설거지는 ‘세제 묻히고 쓱~’이 끝인가 보다. 식당에서도 설거지를 진짜 이렇게 하냐는, 당황스러움을 가득 담은 나의 물음에 Jono는 태연하게 ‘어차피 물기 닦아내면서 세제도 닦아지니 괜찮다.’라고 답했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세제를 묻히면 끝나버리는 설거지가. 하지만 워크캠프 때도 나와 ㄱ 오빠를 제외하고는 모두 ‘물 묻히고 세제 쓱~’ 후에 그릇을 세워두거나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는 방법으로 설거지를 마쳤다. 그 그릇에 10일간 밥을 먹었으나 배탈이 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주장이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과잉세척을 하고 있던 것일까?

#5.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일본인 A와 마주 앉아 있다. 덴마크인 아주머니는 피곤하다며 먼저 방에 들어갔고, Steffi와 Jono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와 단둘이 마주 앉아 있다.

  그와 나는 오늘 오전에 처음 만나 함께 하루를 보냈다. 그런 그와 지금 나눌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는 무엇일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소감 나누기? 어떤 주제를 꺼낼까 잠시 고민하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연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가까운데, 별로 친하지는 않지?”

  강하게 치고 들어온 그의 첫 마디. 많은 대화 주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주제이다. 그는 내가 마주한 첫 일본인이다. 190cm는 되어 보이는 키와 덥수룩한 턱수염은 미디어와 책을 통해 접한 일본인의 이미지와 아주 달랐다. 모르긴 몰라도, 외형만큼이나 그의 성격도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많이 다른가 보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일본을 배웠다. 그 책에 묘사된 일본인은 민감할 수 있는 주제를 이렇게 훅 던지지 않았다. 그는 다르다.

  툭 하고 날아온 질문을 살짝 받아내 본다.

  “아무래도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엮인 문제가 많긴 하지?”

  다시 그의 차례다.

  “한국인은 정말 일본인을 별로 안 좋아해?”

  자꾸 강한 스매시를 날리는 그. 글쎄, 잘 모르겠다. 한국인은 일본인을 별로 안 좋아하나? 그는 나와 말을 나눈 첫 일본인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가 일본인이라서 싫은가? 좋다, 싫다는 판단을 내릴 만큼 강한 인상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다. 그가 일본인이라서 딱히 좋지도, 딱히 나쁘지도 않은 것 같다. 다른 한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나도 모를 일이다. 이 주제로 한국인과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느낀 이대로 답해주었다.

  그는 일본인은 한국인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류의 영향으로 자기도 한국 음식을 좋아한단다. 학교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며, 한국인은 정말 학교에서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점만 배우냐고 물었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왜 한국인은 학교에서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점만 배우는지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 부분까지 파고들기에는 나의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매우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그와 깊은 얘기를 나누기에 나의 영어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영어 실력의 부족함을 느끼며, 돌고 돌아 한국과 일본이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오갈 때쯤, Jono와 Steffi가 돌아오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났다.

  다섯 명이 나란히 각자의 침낭에 들어가 있다.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눈을 깜빡이고 있다. 어두운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길었던 하루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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