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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아이슬란드-로드트립

서랍5-4) 아이슬란드 - 담배는 사랑을 싣고

by 서랍 속 그녀 2020. 3. 31.

20130418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418의 일기(1)

#3. 그녀의 또 다른 요구

  그녀의 요구대로 공동묘지에 차를 세웠다. 차를 멈춰 세운 그녀는 기어코 공동묘지에서 흙을 퍼왔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새로운 요구를 한다. 당장 레이캬비크로 돌아가야겠단다. 이 흙을 가지고 빨리 레이캬비크로 돌아가야 자기 언니를 구할 수 있다나, 뭐라나.

  차를 돌릴 수는 없다. 하루 하고도 반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 무엇보다 지금의 차를 내일 북부의 한 도시에 반납해야 한다.

  우리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는 지도가 근처 도시에 공항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공항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우리도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차 안은 또다시 어색한 침묵 속에 빠졌다.

4월 중순의 흔한 풍경
국도의 흔한 풍경, Steffi의 뒷모습

 

#4. 다시 같이

  Jono와 함께 공항에 들어간 덴마크인 아주머니가 또다시 Jono와 함께 차로 돌아왔다. 기상 악화 가능성이 있어서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비행기는 모두 취소되었단다. 레이캬비크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지자, 덴마크인 아주머니는 우리와 함께 남은 일정을 보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앞으로 이틀을 더 여행할 건데?

  고문당할까 걱정된다던 언니는 그새 잊었는지, 앞으로 이틀을 더 함께하겠다는 그녀를 우리가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은 이틀도 함께 보내기로 했다.

#5. 방 정하기의 문제

  숙소를 잡았다. 작은 부엌과 화장실을 가운데에 공유하고, 양쪽으로 방이 연결되어있는 구조였다. 단면으로 보면 방과 부엌·화장실, 또 다른 방이 ㄱ자 형태로 놓여 있는 그런 구조. 놀랍게도 방 2개와 부엌·화장실이 이 건물의 전체라서, 우리는 얼떨결에 건물 전체를 빌린 셈이 되었다.

  다섯 명이 방을 어떻게 나누어 쓸지의 문제가 생겼다. 모두 침낭을 갖고 있기에 지난밤처럼 한 방에 다섯 명이 모두 애벌레처럼 옹기종기 잘 수는 있지만, 오늘의 일을 겪은 우리 중 그 누구도 덴마크인 아주머니와 함께 방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녀가 먼저 한 쪽 방에 자리를 잡았고, 남은 네 명은 하나, 둘 다른 쪽 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각 방에 매트리스가 두 개, 세 개씩 있었으나 모두 침낭을 갖고 있기에, 매트리스의 수가 부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녀와 함께 방을 쓰는 것이 그녀라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이지 않는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밤을 보내기는 싫었다. 그래서 부엌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그녀를 혼자 두기로 했다.

#6. 담배는 사랑을 싣고

  우리 4명이 자리를 잡은 방에는 세 개의 매트리스가 있었다. 가장 따뜻한 침낭을 들고 있는 Jono가 바닥에서 자겠다고 나서주었다.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하나, 둘 잘 준비를 하는데 Steffi와 Jono가 모종의 대화를 주고받더니, 자기 둘은 방 밖의 복도에서 자겠단다.

  다섯 명 중 Steffi와 Jono만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로 인해 남은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그 둘은 항상 우리로부터 충분한 거리를 두고 담배를 피우고는 했다. 유난히 담배 냄새에 예민한 나도 그 둘의 흡연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 둘은 비흡연자에게 최대의 배려를 해준 셈이다. 비흡연자에 대한 배려로 멀찌감치 떨어져 담배를 피우던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렇게 친해진 둘이, 함께 밤을 보내겠단다. 4월 중순이지만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매서운 바람을 자랑하는 아이슬란드 북부의 이곳에서, 라디에이터 하나만이 겨우 작동하는, 매트리스를 겨우 놓을 수 있는 그 복도에서.

  매트리스를 복도로 들고 나간 그들 뒤로 나와 일본인 A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곧 모로코로 향하는 나와 얼마 전에 모로코를 여행하고 온 그는 서로 얘깃거리가 많았지만, 우리의 대화는 곧 Jono와 Steffi가 만들어내는 진한 사랑의 소리에 묻혀버렸다. 대화가 끊기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일본인 A가 어색하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왔다.

  “Good night”이 오간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핸드폰 불빛 두 개가 동동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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