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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여행 이야기/아이슬란드-로드트립

서랍5-6) 아이슬란드 - 모닥불 피워놓고

by 서랍 속 그녀 2020. 4. 19.

20130419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419의 일기(1)

#3. 눈보라가 지나가고

  Jono의 제안이었다. 어느덧 눈보라는 지나갔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도로 한 편에 차를 세우고 환하게 빛나는 태양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중이다. 그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그가 제시한 이유는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눈보라를 헤치느라 예정보다 많이 이동하지 못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으려던 도시까지 가려면 앞으로 두어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낸 우리기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운전자인 Jono의 피로도가 매우 높았다.

  예산이 빠듯한 여행객이 모였다. 차 렌트비와 보험료만 해도 이미 각자의 하루 예산을 웃돌았다. 숨만 쉬어도 예산 초과인 상황에서 시골 작은 마을의 숙박비는 도시보다 비쌌다.

  그는 그냥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하룻밤을 보내자고 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 같았다. 고백하자면, 무식이 용감이었다. 밤새 차의 시동을 켜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시동을 켜지 않으면 히터를 켤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냥 몸이 조금 불편할 뿐 겨울왕국 아이슬란드의 차디찬 밤공기까지 견뎌야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용감하게 좋다고 답했다.

#4. Jono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시작은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Jono가 자기는 Steffi와 텐트를 치고 잘 테니 남은 우리 셋은 차에서 좀 더 편하게 자라고 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간간이 보이던 버려진 듯한 외양간이 적당할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JonoSteffi는 버려진 외양간에 텐트를 치고 자기로 하고 저녁 얘기를 시작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약간의 간식과 전날 함께 장보고 남은 음식으로 차에서 대충 때우려는데 Jono가 또다시 제안을 했다. 가방에 쿠스쿠스가 있다고 했다. 불을 피우면 쿠스쿠스를 해줄 수 있단다.

  차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 대화는 버려진 외양간을 찾아 모닥불을 피워 저녁을 해 먹는 것으로 일이 커졌다. 눈보라도 헤친 마당에 무엇인들 어떠냐는 마음이었다. ‘그래, 뭐 어떻게든 되겠지의 마음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 표를 던졌다.

#5. Jono의 마법 가방

  여름용 간이 텐트가 나왔다. 랜턴이 나왔다. 쿠스쿠스가 나왔다. 도마가 나왔다. 캐나다에서 자기에게 요리를 가르쳐준 사부님이 선물해주셨다는 칼이 나왔다. 냄비를 비롯한 각종 그릇이 나왔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가방은 흡사 헤르미온느의 마법 가방 같았다.

  버려진 외양간, 혹은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외양간에 한 편에 불을 지폈다. Jono의 주도하에 뚝딱 저녁이 마련되었다. 버려진 외양간 한 편에 모닥불 피워놓고 옹기종기 쭈그려 앉아 먹는 것 치고는 괜찮은 저녁이었다.

  이 상황이 웃겨서, 이 와중에 저녁이 너무 괜찮아서, 옹기종기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웃겨서, 모닥불이 따듯해서, 곱씹어보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불을 살피는 Steffi
Jono와 일본인 A
깨알같이, 나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나의 수저통도 흐릿하게 보인다
정말 춥고 긴 밤이었다

#5. 2020419일에 돌이켜보는 2013년의 419

  2013419일의 일기를 적으려고 보니 오늘이 2020년의 419일이다. 7년의 세월이 흘렀다. 7년의 반은 대학교를 마저 다녔고, 나머지 반은 직장 생활을 했다. 사진이라는 증거가 없었다면 그저 하룻밤의 꿈 정도로 치부했을, 눈보라를 헤치고 외양간에 모닥불을 피워 저녁을 해 먹은 그때 그 시절의 추억에 잠시 빠져본다.

  활짝 열린 방문 사이로 7살 어린 동생이 설거지를 마치고 부엌 정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7살 어린 동생을 바라보며 7년 전의 일을 떠올리니 기분이 참 묘하다.

  그냥, 세월이 참 빠르게 흘렀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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