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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괜히 센치해져서 적는 글 #1. 시간이 멈춘 곳 한 손에는 캐리어를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른다. 신호음과 함께 잠금이 풀리고, 익숙하나 퀴퀴함이 더해진 냄새가 흘러나왔다. 열린 문틈으로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적막한 공기가 느껴졌다. 한 달 만이다. 주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짐만 덩그러니 남은 채 텅 비어있는 이곳은 한때 우리 삼 남매의 둥지였고, 더 먼 과거에는 우리 다섯 식구의 보금자리였다. 그저 집을 정리하고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큰 그림이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0년 전 우리 가족이 서울을 떠날 때 정리되지 못한 채 남겨진 이 집은 세월이 흘러 삼 남매의 둥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어 애틋한 이 집은, 과거에 서울을 떠난 우리 가족을 대신해 묵묵히.. 2021. 10. 30.
일상) 어디부터 불편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1. 불편한데, 불편하다고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뜨르르륵. 삑삑삑-” 적막한 집,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무심한 기계음을 통해 동거인이 무사히 귀가하였다는 소소한 안도감을 느끼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편안함을 느낀다. 도어락. 누구나 손댈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손대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웬만한 친분으로 상대의 집에 드나들 수는 있어도, 어지간한 친분이 아니면 감히 손댈 수 없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어 약속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 약속이 깨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차가운 기계음은 따뜻한 신호음이 된다. “뜨르르륵. 삑삑삑-” 적막한 집,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차가운 기계음이 귀에 꽂히며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오빠는 부.. 2021. 1. 25.
일상) 카페인 청정구역이 무너지다 #1. 따뜻한 모카면 얘기가 다르지. 방학을 맞이하여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그래도 9시에는 일어나야지’하며 맞춘 알람을 10분씩 늦추다 보니 어느덧 10시, 그래도 일어나기가 싫다. 아직 침대와 한 몸인 내게 잠시 어딘가를 다녀온 듯한 오빠가 묻는다. “커피 한잔할래?” “나 커피 안 마시잖아.” “따뜻한 모카면 얘기가 다르지.” “뭐래.” #2. 내 몸은 카페인 청정구역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는 ‘맥심’을 즐겨 마셨는데, 언제부턴가 커피를 마시고 난 후의 텁텁한 느낌과 원두 냄새가 싫어졌다. 그렇게 커피를 끊은 지 어언 10년. 평균 섭취량은 1년에 한 잔 정도. 정말 거절하기 힘들 때 한 모금씩 마신 결과다. 고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에 맥심 한 잔을 마시면, 자습 시간에 그렇.. 2021. 1. 5.
교대 입학) 과(科) 선택 시 알아두면 좋은 점 오랜만에 졸업한 학교를 둘러보다 보니 언젠가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야, 우리가 진작에 이런 거 알았으면 다른 과 갔지” 제가 10년 전에 알았으면 혹시나 다른 선택을 했을까 싶은, 교대 입학을 앞둔 예비교대생에게 교대의 과(科)에 대하여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1. 교대에도 과(科)가 있다. 혹시 알고 계시나요, 교대에도 과가 있다는 사실을? 저는 입학 전에, 과를 선택하라는 안내를 받고서야 알았습니다. 교대마다 다르지만, 각 교대에는 약 10개 정도의 과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의 교과교육과(국어교육, 영어교육, 실과교육, 미술교육 등)가 있고 교대에 따라 유아교육, 특수교육, 교육학과 등이 추가로 있습니다. 교대에서 과(科)는 ‘부전공’, ‘.. 2021. 1. 4.
일상) 알부자가 될 예정입니다. #1. 알부자가 될 예정입니다 미운 7살부터 이팔청춘, 낭랑 18세, 반오십을 차곡차곡 지나 어느덧 계란 한 판을 앞두고 있다. 강산 정도는 변해줘야 겨우 바뀐다는 그 앞자리가 몇 시간 후에 바뀐다. 뭐 달라질 것 있겠냐 싶으면서도 할 수만 있다면 ‘나이 듦’은 거부하고 싶다. 몇 달 전부터, 아니 1년 전부터 내내 축하를 받아왔다. 29살이 되면서부터 미리 ‘30살’도 축하받았다. 1년 내내 꾸준하게 ‘내년이면’, ‘6개월 뒤에’, ‘3개월 뒤에’, ‘곧’, ‘다음 달에’, ‘보름 뒤에’ 맞이할 서른을 축하받았다. 그 축하 속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바로 ‘계란 한 판’이다. 한국인의 情인지, 무려 ‘서른’인데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계란 한 판을 선물해주겠다’라는 인사말이 심심치 않게.. 2020. 12. 31.
서랍8-1) 벨기에 - 농담이 진짜가 되었다 20130507의 일기 #1. Arno는 기차역에서 Arno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늘 그의 집에서 1박을 하고 내일 함께 스위스로 떠난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그와의 인연을 떠올려 본다. 2012년 핼러윈,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 클럽을 마다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무리에 그와 내가 있었다. 우리는 ‘LOVE(LOng term Volunteer Experience) KOREA’라고 불리는, 30여 명의 다국적 참가자들이 2~3명씩 팀을 이뤄 3개월간 지역 사회봉사 및 문화교류를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었다. 전국 각지로 흩어진 참가자들이 중간 평가를 위해 서울로 모인 오늘, 각국의 젊은이들은 이태원 클럽으로 향했다. 애늙은이던 나는 ‘무려’ 핼러윈의 이태원 클럽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여 이른 귀가를 .. 2020. 12. 31.
서랍7-2) 프랑스 파리 - 그래도 이곳을 떠나고 싶다 20130506의 일기 #1. 그래도 이곳을 떠나고 싶다 거쳐 가는 곳일 뿐이다. 지금 내게 파리가 주는 의미는 그렇다. 숙소도 2박만 예약을 했다. 오늘 재정비하며 쉬고 내일 바로 떠나겠다는 뜻이다. 밀린 빨래를 하고 가방 정리를 하며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내일 스위스로 향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이번 주말에 함께 하이킹하기로 한 스위스 친구의 연락이다. 주말 내내 비가 올 예정이니 일정 조율이 가능하다면 스위스는 다음에 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말처럼 자연 그 자체인 스위스를 굳이 비가 오는 걸 뻔히 알면서 가기는 아쉽다. 갑자기 일정이 붕 떠버렸다. 숙박을 연장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지금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낭만의 도시, 파리에 있다. 몇 날 며칠을 보낼 거리는 차고도 넘친다.. 2020. 12. 28.
서랍7-1) 프랑스 파리 - 지갑이 사라졌다. 20130505의 일기 #1. 지갑이 사라졌다. 자정이 넘은 시각, 파리 시내의 한 지하철역이다. 12시간 넘게 이동을 한 지금, 피곤함보다 긴장감이 앞선다. 깜깜한 새벽에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메고 낯선 곳을 돌아다니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빨리 숙소에 도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찰구를 지나기 위해 지갑을 찾는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던 그 지갑이 손에 닿지 않는다. 어? 보조 가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옷 주머니를 살핀다. 앞으로 멘 가방을 살핀다. 다시 거꾸로 앞으로 멘 가방을 살핀다. 옷 주머니를 살핀다. 보조 가방을 뒤진다. 사라졌다, 내 지갑이. 지금, 이 순간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보다 지갑 안에 지하철 표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이 더 당혹스럽다. 무임승차로 오해받아 벌금을 물게 .. 2020.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