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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5-7) 아이슬란드 - Icelandic humor를 아세요? 20130422의 일기 #1. 로드트립의 끝 3박4일에 걸쳐 이동한 우리는 드디어 아퀴레이리(Akureyri)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보다 작아 보이는 이곳은 사실 아이슬란드 제3의 도시이자 북부 최대 도시이다. 4인실 도미토리가 있는 숙박시설은 이곳이 사람이 모이는 대도시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아퀴레이리에 도착하자마자 일본인 A와 덴마크인 아주머니는 서둘러 레이캬비크로 돌아갔고, Jono와 Steffi도 다음 날 떠났다. 나는 홀로 아크뤠이리에 남아 도시를 살짝 둘러보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는 뜻이다. 충분히 쉬고, 3박4일에 걸쳐 왔던 그 길을 버스로 8시간 만에 돌아왔다. 마지막 이틀 동안 작은 에피소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이슬란드의 마지막 편.. 2020. 5. 3.
식(食) - 급식인생 n년 차(feat. 편식하는 교사)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부장 선생님의 뒤로 제가 세상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취나물 무침과 마늘종 볶음, 급식실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이토록 다른 이유입니다. 급식실 조리사님께서 취나물 무침과 마늘종 볶음을 식판 가득 담아 주셨지만, 그쪽으로는 젓가락이 단 한 번도 향하지 않습니다. 직장인에게 급식은 저렴한 식비와 균형잡힌 식단으로 굉장히 감사한 일입니다만, 교사 인생에 예상치 못한 난관이기도 했습니다. 매년 학생들에게 편식을 고백하지만 그렇다고 학생 앞에서 교사가 대놓고 편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기에 학생과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싫어하는 반찬도 함께 먹는 괴로운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학생 없이 급식을 먹는 지금, 대놓고 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즐기는 중입니다... 2020. 4. 26.
서랍5-6) 아이슬란드 - 모닥불 피워놓고 20130419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419의 일기(1) #3. 눈보라가 지나가고 Jono의 제안이었다. 어느덧 눈보라는 지나갔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도로 한 편에 차를 세우고 환하게 빛나는 태양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중이다. 그의 제안은 갑작스러웠지만, 그가 제시한 이유는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눈보라를 헤치느라 예정보다 많이 이동하지 못했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으려던 도시까지 가려면 앞으로 두어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낸 우리기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무엇보다 운전자인 Jono의 피로도가 매우 높았다. 예산이 빠듯한 여행객이 모였다. 차 렌트비와 보험료만 해도 이미 각자의 .. 2020. 4. 19.
서랍5-5) 아이슬란드 - 눈보라에 맞서는 남자 20130419의 일기(1) #1. 평정심 유지의 중요성 순식간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하늘은 급변했고, 우리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에 갇혔다. 산 중턱의 어딘가, 길을 이탈하면 차가 전복될 수 있는 그 어딘가. 도로의 경계를 알려주는 희미한 황색 막대를 이정표 삼아 거북이보다 느리게 차를 움직이는 중이다. 산으로 진입하기 전 충분히 날씨를 확인했다. 인터넷으로 날씨를 확인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아 새로운 차를 빌리면서도 사장님께 산을 통과해도 되는 날씨일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모두가 오늘 날씨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산에 진입했다. 하지만 이곳 섬나라의,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날씨가 심술궂은 변덕을 부리며 눈보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이방인인 우리가 그 변덕을 정면.. 2020. 4. 12.
의(衣) - 왜 월요일에만 예쁜 옷 입어요? #1. 선생님, 뭐 잊으신 거 없어요? - 2019년 1학기 어느 날 5교시는 체육입니다. 급식을 먹고 양치 겸 화장실에 들르는 김에 체육복 바지로 갈아입기로 합니다. 갈아입은 치마는 세면대 옆 공간에 고이 올려두고 양치를 합니다. 마주친 학생들과 가벼운 대화도 나누고, 화장실 앞 복도를 전력 질주하는 학생들에게 강렬한 눈빛도 날리며 양치를 마칩니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게 교실로 돌아와 TV 화면에 알림장을 띄우고 알림장을 적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시간표와 내일의 시간표, 학급일지를 참고하여 알림장을 적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을 보니 크게 잊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잠시의 휴식을 즐기려는데 한 학생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묻습니다. “선생님, 뭐 잊으신 거 없어요?” 동공이 흔들리기 시.. 2020. 4. 6.
점심 메뉴 정하기가 낯선 직장인 이야기(feat. 초등 교사) 매일 같이 긴 회의가 열리는 요즘입니다.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는 맞대지만 뾰족한 수는 찾지 못하는 회의의 반복입니다. 수요일 오전 10시, 여느 때처럼 한 선생님의 교실로 모입니다. 회의가 필요한 사안 한 무더기를 들고 오신 학년 부장님께서 종이 뭉치를 ‘탁’ 내려놓으시며 비장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장 중요한 것부터 정하고 시작할까요?” 옆 반 선생님께서 거드십니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저는 ‘아, 학사일정 안이 다시 나왔나?’ 기대하며 눈을 반짝거립니다. 너무 궁금했거든요, 방학을 언제 하는지.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답변이 저를 둘러쌉니다. “돈까스 어때요?” “오늘 요 앞 장터 열리는 날인데, 분식?” “오랜만에 짜장면도 괜찮지요.” 아, 저는 아직 사회생활 .. 2020. 4. 4.
서랍5-4) 아이슬란드 - 담배는 사랑을 싣고 20130418의 일기(2) 앞 이야기 : 20130418의 일기(1) #3. 그녀의 또 다른 요구 그녀의 요구대로 공동묘지에 차를 세웠다. 차를 멈춰 세운 그녀는 기어코 공동묘지에서 흙을 퍼왔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새로운 요구를 한다. 당장 레이캬비크로 돌아가야겠단다. 이 흙을 가지고 빨리 레이캬비크로 돌아가야 자기 언니를 구할 수 있다나, 뭐라나. 차를 돌릴 수는 없다. 하루 하고도 반을 달려 여기까지 왔다. 무엇보다 지금의 차를 내일 북부의 한 도시에 반납해야 한다. 우리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는 지도가 근처 도시에 공항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공항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우리도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가 정해진 차 안은 또다시 어색한.. 2020. 3. 31.
서랍5-3) 아이슬란드 - 사실이 아니기를, 망상이기를 20130418의 일기 #1. 밤사이 이곳은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밤을 보낸 사이,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1번 국도의 어느 곳, 소복이 쌓인 눈이 온 세상을 반짝이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새하얀 눈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황홀했다. 이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곳에, 이미 깔끔하게 제설 된 도로만이 누군가 먼저 이곳을 다녀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 한 편에 차를 세우고, 새하얀 눈밭에 우리의 흔적을 남겨보기로 했다. #2.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야?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고, 자연온천을 즐기며 평화를 만끽하던 우리 사이에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Jono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그의 짜증 섞인 반응에.. 2020. 3. 29.